협치는 포기했는가[동아 시론/윤종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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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시작부터 원 구성 파행… 국회의장-與野 모두 책임 못 피해
권력 분산과 책임 공유는 시대정신… 정치 갈등, 타협과 협상으로 풀어야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
21대 국회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원 구성 과정에서 새로운 국회에 기대했던 ‘협치’는 사라졌고 무능한 ‘식물 국회’의 구태가 재연됐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 정치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진단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임기 시작 후 한 달이 되어가지만 의원들은 ‘헌법과 양심을 준수하고 국가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개원식 선서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다. ‘여대야소’의 21대 국회가 여당의 일방적 독주와 야당의 보이콧의 악순환으로 파행으로 끝날지 우려가 크다.

국회 외부의 전문가 시각에서 이번 원 구성 파행의 원인을 진단해보면 무엇보다도 여당의 6개 상임위원장 단독 인선과 야당 의원의 상임위 강제 배정을 허용한 국회의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국회법에 따라 원 구성 시한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국회의 중립적인 ‘중재자’로서 의회의 갈등을 억제, 조정해야 할 책임을 망각했다. 야당의 강한 반발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본회의 개최와 위원장 선출을 허용한 것은 국회의장 역할에 오점을 남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 또한 이유를 막론하고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총선 민심에 나타난 ‘177석 대 103석’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회법 절차에 따른 상임위원장 선출 행위를 되돌릴 수는 없기에 무조건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 국회 개원 자체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원 구성 협상 재개의 핵심적인 전제조건은 법제사법위원회 개혁에 대한 여당의 즉각적인 약속 이행이다. 그동안 법사위는 ‘상임위 위의 상임위’로 비판받아 왔다. 모든 법안은 법사위를 거쳐야 본회의에 갈 수 있기에 법사위의 비토권(거부권)은 강력하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정치 공방이 재개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일하는 국회법’ 제1호 공약으로 제시한 것처럼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없애고 법제 및 사법으로 이원화해 ‘법사위 갑질’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그리하면 법사위원장이 사법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없고 지금처럼 치열한 쟁탈전의 대상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국회 원 구성 협상의 주체는 국회의원 20인 이상이 모여 만든 교섭단체로 현재 민주당과 통합당이 전부다. 교섭단체는 국고보조금 배분, 정책연구위원 배정 등에서 큰 혜택을 갖는 동시에 원활한 국회 운영을 위한 사전 협의, 조정의 책임을 진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명분으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하면서 국회법 제33조에 규정된 교섭단체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한 것이다. 교섭단체가 없는 미국 의회는 다수당이 모든 위원장을 차지하지만, 교섭단체가 강한 독일은 협상과 타협으로 의회를 운영한다. 우리 국회는 민주화 직후인 여소야대의 1988년 13대부터 원 구성을 위한 합의의 원칙이 관행으로 정착됐다. 이후 여대야소의 정국에서도 합의의 원칙은 지켜졌다.

21대 국회에서 협치가 실현되려면 대통령제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177석 플러스’ 의석을 가진 여당이 대통령 행정부와 함께 야당을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야당을 입법부의 위상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야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국회 마비가 장기화되면 거대 여당이 그 부담과 책임을 더 크게 져야 할 것이다. 일각의 우려와 같이 검찰총장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 법사위원장 장악을 시도했다면 삼권분립의 국정 운영과 국회의 협치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와 사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갈등을 타협과 협상의 정치로 풀지 못하면 정치적 문제는 거꾸로 사법부와 행정부의 결정에 종속하게 되어 삼권분립이 파괴된다. 지난 총선 민심은 거대 여당에 의회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일방적인 독주를 주문한 것이 아니라, 확고한 여대야소의 정치구조에서 새로운 방식의 수평적 협치를 기대한 것이다. 국민들은 4년 전 총선에서 협치를 위한 ‘여소야대’의 다당제 실험이 실패하자 ‘여대야소’의 새로운 공존을 주문한 것이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권력의 분산과 책임의 공유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시대정신이고 협치의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력으로 발생한 본인과 주변의 권력남용 때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21대 국회의 협치의 성공은 ‘권력의 분산과 공유의 정치’를 위한 정치권의 ‘정치력 복원’에 달려 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
#협치#파행#권력 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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