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6·25 영웅들… 지체할 시간이 없다[국방 이야기/손효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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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왼쪽)가 지난해 9월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모습. 육군 제공
6·25 참전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왼쪽)가 지난해 9월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모습. 육군 제공
손효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손효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6·25전쟁 참전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90)는 지난해 뒤늦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그에게 훈장 수여가 결정된 건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1953년 6월. 그러나 하루에도 여러 번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던 탓에 훈장을 전달받지 못했다. 훈장이 나온 사실도 몰랐다. 당시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은 그는 지난해 상이기장(傷痍紀章)을 찾겠다며 국방부에 전화했다가 서훈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죽고 나서 훈장을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 생전에 받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6·25전쟁 70주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6·25 참전 유공자의 평균 연령은 우리 나이로 90세. 정부가 70주년을 앞두고 참전 유공자들을 예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이들이 생존해 맞는 사실상의 마지막 10주기가 될 가능성이 커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생존 6·25 참전 유공자는 8만4013명. 2010년 12월 18만6315명에서 10만 명 넘게 줄었다. 지난해 12월에는 8만9600명이었다. 5개월 새 5600명가량이 별세했다.

참전 유공자들에게 무공훈장을 찾아주는 일을 두고 일분일초가 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처럼 참전 유공자들의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서다.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육군인사사령부에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을 설치했다. 조사단 임무는 전쟁 당시 혼란 등으로 훈장이 전달되지 못한 5만6000여 명에게 훈장을 찾아주는 것. 기한은 2022년까지다.

그러나 이달 중순 현재 5만6000여 명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6200여 명에 그쳤다. 이 중 훈장 전달이 완료된 사람은 2500여 명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단시간 내에 수만 명의 소재를 정확하게 찾아야 하지만 조사단 인원은 15명에 불과하다. 소재지 파악을 위한 관련 부처 및 각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도 쉽지 않은 등 곳곳이 난관이다.

더군다나 2500여 명 중 수훈자 본인이 직접 훈장을 수령한 경우는 10%에도 못 미쳤다. 군 관계자는 “훈장을 수령한 유가족들은 아버지나 남편이 훈장이 나온 사실조차 모르고 돌아가신 것을 아쉬워한다”고 전했다. 생전에 훈장을 받았더라면 국가와 후손들이 자신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더 명예롭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참전 유공자의 증언을 청취해 6·25 전쟁사라는 큰 그림의 누락된 퍼즐 조각을 채워 넣는 일도 시급하다. 본보는 지난달 중순부터 6주에 걸쳐 참전용사들이 겪은 전쟁의 참상과 그들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하는 기획 기사 시리즈 ‘노병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했다. 이 기사 준비 기간 인터뷰 후보자 명단에 오른 참전용사 1명이 별세했다. 역사의 산증인들이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건강하던 또 다른 참전용사는 며칠 새 치매 증상이 악화됐다. 본보가 만난 참전용사들은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식의 전쟁 무용담을 펼쳐놓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이들이 들려준 전쟁 이야기는 각기 달랐지만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같았다. 다시는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것. 이들은 자신들이 증언한 날것 그대로의 전쟁 이야기가 비극의 재발을 막는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숨은 영웅’으로 살아온 참전용사들은 무엇보다 비교적 젊은 세대인 기자가 자신들이 겪은 전쟁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기록한다는 사실과 젊은 세대가 기사를 읽게 된다는 사실을 뿌듯하게 생각했다. 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를 1인칭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도한 기사 댓글에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찾아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한민국을 있게 한 진정한 영웅이다” “어르신 덕분에 제가 있을 수 있다”는 등의 감사와 예우를 표하는 내용이 많았다.

“우리의 현재는 6·25 참전용사들이 준 선물이다. 그 선물에 대한 보답은 기억이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내건 대국민 캠페인용 문구다. 참전용사들에게 뒤늦게나마 훈장을 수여하는 일도, 증언을 듣고 기록하는 일도 모두 그들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일 것이다. 고령의 참전용사들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기억’이라는 선물로 보답할 수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손효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hjson@donga.com
#6·25전쟁 참전용사#참전 유공자#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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