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를 위하여[동아광장/김석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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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가르는 싸움은 공동체에 상처, 천안함 용사들 헌신조차 정쟁 악용
포용과 다양성의 ‘시민성’ 회복해야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공동체(共同體)는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개념이다. 동시에 추상적이고 복잡한 개념이기도 하다. 범박한 수준에서 공동체를 정의해 보면, 공통의 활동, 신념을 공유하고 주로 호의, 충성도, 공통의 가치로 함께 묶인 사람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공동체로 부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공적 영역에서 대중을 상대로 활약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명한 좌파 또는 우파로 내세울 때 신뢰를 철회한다. 남북이 갈라서 반목과 대결을 반복해 온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좌와 우의 구분은 자신의 패거리가 행사하는 정치적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적용되었을 뿐 별 내용 없이 설득력을 상실해 왔다. 유력한 정치 파벌(faction)이 제도권 정당을 번갈아 장악하고 이 과정에서 정책적 구체성을 내재화시키지 못한 두 진영만 남았다는 게 적절한 평가일 것이다. 그러니 좌우로 구분해 선명성 경쟁을 하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보일 리 없다. 정치적 탐욕의 검은 의도만 뚜렷하다.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차이를 왜곡하고 과장하여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게 만들려는 협잡일 때가 많다. 정치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수작이야 일상이 되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좌우(사실은 내 편과 네 편의 이익)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자세가 가진 진짜 위험은 상징적이고 정서적 수준에서 느슨하게 유지되고 있는 ‘우리’라는 인식,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조차도 정파적 이해에 부합하는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가 46명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시킨 천안함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처우다. 천안함 생존자 중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십자인대 파열, 이명, 난청, 신경계통 장애 등 고통에 시달리다가 의병 전역도 아닌 일반 전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역 후에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경우는 소수이며 온전치 못한 몸을 이끌고 인정을 받기 위해 여러 기관을 전전한다. 더 어이없는 현실은 국가유공자나 유가족이 되려면 ‘국가입증’이 아닌 ‘개인입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천안함 생존 장병 33명 중 지난 10년간 10명만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공동체를 위해 일하다 감행한 희생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처우 없이 그 누구도 자진해서 나서지 않는다. 고귀한 희생이 정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진정한 공동체가 되고 구성원들도 나와 가족, 이웃을 위해 규칙과 제도에 순응하고 희생한다.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한 논란과 정쟁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파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든, 권력의 더러운 거짓말이라고 의심하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다가 그 배 안에서 희생된 장병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현재 진행형인 고통은 우리가 고결하다고 착각하는 이념의 영역 밖에 존재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특정 이념에 바탕을 둔 상상의 공동체가 아닌 삶의 비루함을 어루만지는 차가운 현실 인식에 기반한 실체적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천안함 희생자들을 정파적 이해에 붙잡아 두고 있는 한 대한민국은 공동체가 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이들을 외면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정치학자 코언은 정치적 공동체가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 형성의 기초가 되어 다른 공동체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해주는 상징이 다양한 의미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그 경우에만 대한민국 공동체는 실체 없는 허구가 아닌 구성원의 마음과 행위에 녹아든 현실이 될 수 있다. 좌와 우의 차이도, 진보와 보수의 경쟁도 다양성에 대한 포용으로 담아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보다는 시민으로, 애국심보다는 시민성으로라는 인식의 진화가 절실하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의무를 이해하고 준수하고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를 인식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만이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속 가능케 한다. 차이에 대한 관용이 규범이 되고 시민성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강건해질 때 우리를 위한 다른 사람의 희생도 고귀하게 볼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해 보상하고 진정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공동체는 단일대오의 정파성과 애국심이 아닌 다양성에 기반한 시민성에 의해 작동되어야 한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공동체#시민성#공적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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