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 임금 매년 2조, 수만 명의 삶 뒤흔들어
임금 지급보다 처벌 감수 체불이 저렴한 탓
법정 가도 벌금이나 집행유예 받는 데 그쳐
제재 강화해야 “제때 지급” 규칙 작동할 것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지난주 한 중견기업 대표가 임금 체불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임금 체불 사건치고는 형량이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체불한 임금이 얼마였는지 아는가. 약 100억 원이었다.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200여 명에 달했다. 전전긍긍하며 생활해야 했을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한 기업가의 임금 체불은 적어도 수백 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삶을 뒤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잘못을 해도 교정시설에서 2년 남짓 있다가 나오는 것이 처벌의 전부다.
그나마도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형은 일반적인 임금 체불보다 무거운 편이었다. 임금 체불 사건의 실형 선고 비율은 매우 낮다. 대부분이 벌금형이고, 간혹 징역형이 선고되더라도 집행유예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근로자 몇 사람의 돈을 떼어먹고 퇴직금을 주지 않는 정도로는 좀처럼 실형 선고가 나오지 않는다. 5000만 원 미만 임금 체불의 양형 기준은 4∼8개월이다. 검사가 구형하면 피고인이 “아,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대놓고 안심하는 수준이다. 못 받은 임금이 5000만 원에 이르려면 대체 얼마나 오래 일을 해야 했을지 상상해 보라. 피해자가 돈도 받지 못하고 일한 시간보다 가해자가 교정시설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짧다.
물론 형사 처벌과 별개로 민사소송을 통해 못 받은 돈을 받을 수는 있다. 원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임금 체불 피해자들은 보통 자력이 없다. 당연하다.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한 채로 적어도 몇 달이 지났기 때문이다. 생계가 다급한 처지에서 소송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송을 한다고 해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임금 체불 가해자들이 타인 명의로 재산을 이전하는 등 진작에 ‘조치’를 해놓고 돈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빈번해, 승소하더라도 실제로 돈을 받기 어렵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3년으로 짧다 보니 빚어지는 일도 있다. 당장 고정비용인 월세나 통신비를 내기 위해 분투하다가, 또는 매달 월급을 몇십만 원 덜 받아도 언젠가는 밀린 돈을 받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일하다가 일부 채권의 소멸시효가 지나기도 한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와 임금체불죄의 공소시효(5년)가 달라, 이를 혼동해 5년 안에만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되는 줄 잘못 알아 시기를 놓치는 피해자들도 있다.
2024년 한 해의 체불 임금 총액은 2조445억 원이었다. 2025년 1∼7월 총액이 1조347억 원이었으니, 2025년에도 2조 원을 넘겼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한 명당 못 받은 돈이 1억 원이라고 가정해도 피해자는 2만 명이고, 한 명당 못 받은 돈이 5000만 원이면 피해자는 4만 명이다.
이와 같은 경제 범죄가 가능하고 만연한 가장 큰 이유는 임금을 주는 것보다 주지 않고 벌을 받는 대가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급여를 제때 지급할 유인이 크지 않다. 임금 체불은 반의사불벌죄이기도 해서, 사업주 입장에서는 임금을 주지 않다가 재판을 받게 돼서야 뒤늦게 합의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양심을 적당히 버리고 법을 적당히 무시하면, 생계가 궁지에 몰려 낙담한 피해자가 “그 돈이라도 받고 합의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우월한 전략처럼 보일 지경이다. 실제로 임금 체불을 해 놓고 “지금 줘야 하느냐”, “조금 있다가 줘도 되지 않느냐” 같은 말을 하는 가해자들이 정말 많다. 다들 어디선가 들은 것이다. 월급 정도는 적당히 미뤘다 줘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고.
작년 10월부터 ‘상습 임금체불 근절법’이라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1년간 임금 체불을 한 사업주에게는 정부 지원을 제한하고 공공 입찰에서도 불이익을 준다.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임금 등의 3배 이내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해졌다. 명단 공개 사업주에 대한 출국금지 근거 규정도 마련됐다. 임금 체불의 비용을 높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임금 체불 문제는 임금 체불의 비용이 임금 지급의 비용보다 더 커야 해결된다. 사업주에게 적당한 수준의 임금 체불이 가장 경제적이고 저비용인 선택인 한, 매년 수만 명이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해결될 수 없다. “감옥에 가기 싫으면 월급은 줘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정도의 형사적 엄벌과, “지금 줘야 할 임금을 나중에 주면 훨씬 더 큰 비용이 든다”는 계산이 가능할 정도의 행정적·민사적 제재가 있어야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다는 근로계약의 근간 규칙에서, 합법이 위법보다 명백히 비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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