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항공청에 따르면 2020년 39건이었던 보조배터리 관련 사고는 지난해 85건까지 늘었습니다. 이 중 70% 이상이 승객이 소지한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난 사고입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나 항공사들이 비행기에서 보조배터리로 휴대전화 등 다른 기기를 충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5일 현재 국토교통부도 국내 모든 항공사에서 기내 보조배터리 사용을 금지하는 안전 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내에서는 보조배터리를 ‘소지’만 할 수 있는 겁니다.
이에 더해 대한항공에서는 한 가지 안전 규정을 더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지상에 있을 때 기내에 연기가 발생하는 등 ‘긴급하진 않지만 비정상적인 상황’이 생길 경우 승객들이 신속하게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긴급 하기(Rapid Deplane)’ 절차를 새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대한항공은 이 내용을 비행 운영 교범(FOM)에 추가하고 승무원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조배터리 화재 등으로 인해 기내 온도가 상승하거나 연기가 발생하는 등 ‘긴급하진 않지만 비정상적 상황’일 때 비상구를 열지 않고 출입문에 탑승교나 계단을 붙여 승객을 대피시킬 수 있을 경우 ‘긴급 하기’ 절차를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해당 절차를 신설하는 이유는 촌각(寸刻)을 다툴 정도가 아닌 비정상 상황에서 비상구 슬라이드를 이용해 승객을 탈출시킬 경우 오히려 탈출 과정에서 다치는 승객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월 설 명절 연휴에 발생했던 에어부산 391편 지상 화재 사고 당시에도 승객 20여 명이 슬라이드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습니다.
경제적 이유도 있을 겁니다. 비상탈출 슬라이드는 한번 펼치면 다시 쓸 수 없습니다. 교체 비용은 낮아도 약 1만 달러(약 1460만 원), 비싸면 3만5000달러(약 5200만 원) 이상입니다.
다만 내부에서는 우려도 적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비상 탈출’과 ‘긴급 하기’를 구분할 기준이 모호하다는 겁니다. 만약 ‘긴급 하기’를 결정했는데 상황이 빠르게 악화될 경우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떠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도리어 승무원들의 판단이나 대처가 늦어지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붙었는데 ‘긴급 상황’이 아닐 수 있는지도 궁금증이 생길 텐데요. 비행기 객실의 손에 닿는 모든 부분은 난연성 재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든 소재는 일부러 불씨를 놓아도 15초 안에 꺼져야 하고, 15cm 이상 타들어가면 안 된다는 제작 규정이 있습니다. 이에 배터리로 인해 머리 위 선반에서 불이 나면 빠르게 확산할 수 있지만, 몸에 지니고 있던 배터리라면 불이 붙더라도 승객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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