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문제 간섭말라” 가해 부모에… 두번 우는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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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치료-재학대 방지교육 등 지원책 거부해도 강제할 방법 없어
계부 폭력에 수년 시달린 10대 소녀, 꾸준한 상담치료 통해 조금씩 호전
전문가 “지원 프로그램 의무화 필요”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아동이 그린
‘물고기 가족’ 그림. 심리상담을 받기 전에는 어항 속 물고기들을 그린 뒤 그 위에 덧칠을 했다(왼쪽 사진). 심리상담을
받고난 뒤에 그린 오른쪽 그림에서는 어항 속 물고기들이 웃고 있다.
그림마당상담센터 제공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아동이 그린 ‘물고기 가족’ 그림. 심리상담을 받기 전에는 어항 속 물고기들을 그린 뒤 그 위에 덧칠을 했다(왼쪽 사진). 심리상담을 받고난 뒤에 그린 오른쪽 그림에서는 어항 속 물고기들이 웃고 있다. 그림마당상담센터 제공
2017년 5월, 초등학생 A 양이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경찰을 거쳐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됐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어머니는 A 양에게 폭언을 자주 했다. 딸에게 상냥하게 대하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화를 내는 일이 잦았다. 이 같은 정서적 학대를 당하던 A 양은 자해를 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A 양과 어머니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상담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도우려 했다. 하지만 이 기관은 A 양 모녀를 돕지 못했다. 어머니가 “우리 가족 일에 왜 간섭하느냐. 내 아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지원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가해 부모들의 거부로 피해 아동이 치료와 상담 및 교육 등의 지원을 받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상담 경험을 통해서 보면 아동학대 가해 부모의 절반가량은 전문기관의 지원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현행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 재학대 방지를 위해 피해 아동과 보호자를 포함한 가족에게 상담, 교육, 의료·심리적 치료 등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도록 돼 있고 아동학대 가해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어 A 양처럼 진료와 상담 등의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 신고가 접수됐다. 아버지가 중학생 아들 B 군을 심하게 때린다는 내용이었다. B 군의 아버지도 기관의 지원을 거부했다. 직장 일로 바빠 자신이 상담이나 교육을 받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전문기관의 도움으로 올해로 2년째 상담 치료를 받고 있는 고교생 C 양(16)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C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4년간 의붓아버지에게 성폭력과 언어폭력을 당했다. C 양은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결석하는 날이 많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C 양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고 ‘내 편’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아동이 학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가해 부모의 재학대를 막기 위해선 학대가 발생한 가정에 대한 전문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재진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는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동이 겪은 학대의 후유증을 완화하기 위한 심리상담과 치료가 반드시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과 보호자가 상담과 교육, 치료 등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19,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이순기 부장은 “상담과 교육 등을 강제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아동학대#지원책 거부#피해아동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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