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 사망[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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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방문판매업소를 지난달 30일 다녀온 80세 남성 A 씨. 자가 격리 중이던 3일과 11일 진단검사를 받았고, 2차 검사에서 확진 판정이 나와 다음 날 입원했다. 아무런 증상이 없었던 A 씨는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놀랐다. 중증 폐렴으로 폐가 하얗게 변해 있었던 것. A 씨는 손쓸 새도 없이 15일 숨졌다. 확진자와 접촉한 지 16일 만이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폐렴이 악화돼도 자각 증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은 폐렴에 걸리면 열과 기침이 나는데 이는 균을 없애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한 결과다. 나이 들면 방어기제가 약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A 씨의 직접적인 사인이 폐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숙주 모르게 조용히 몸을 망가뜨려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방역이 어려운 이유는 무증상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많은 연구에서 (국내외) 무증상 감염자 비율을 40∼50%로 추정한다”고 했다. 젊은 층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 미국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재소자 3000여 명을 조사했더니 무증상자가 96%였다. 국내에서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깜깜이’ 환자 비율이 10%를 넘어선 것도 무증상 전파 탓이다. 무증상 환자 B가 C를 감염시킨 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나으면 C가 깜깜이 환자가 된다.

▷증상은 없어도 이미 몸은 조용히 망가진 상태인 사람도 많다. 중국 우한과 일본 도쿄에서는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검사했더니 양성으로 확인된 사례가 잇따랐다. 이달 초엔 서울 구로구에서 72세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미국 스크립스 리서치 추정 연구소의 연구팀이 3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했던 무증상 확진자 76명의 흉부를 촬영한 결과 54%의 폐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증상이 없다고 신체에 손상이 없었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결론 내렸다. 감염된 줄 모르고 살다 훗날 폐가 손상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스텔스 공격’을 방어하려면 진단검사의 그물망을 넓게 쳐서 무증상 감염자를 최대한 찾아내야 한다. 코로나19는 증상이 나타나기 직전에 전파력이 가장 높다. 고령자의 ‘소리 없는 건강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자가 격리 중인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흉부 촬영을 하는 등 좀더 적극적인 의료 행위가 필요하다. 국내 코로나19 평균 치명률은 2.3%지만 70대는 10.1%, 80세 이상은 25.8%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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