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를 구한 무명의 용사들[현장에서/김배중]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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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노태형(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4일 18연패의 사슬을 끊는 끝내기 안타를 친 뒤 기뻐하고 있다. 한화 제공
한화 노태형(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4일 18연패의 사슬을 끊는 끝내기 안타를 친 뒤 기뻐하고 있다. 한화 제공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14일 경기를 앞둔 프로야구 한화 더그아웃은 초상집 같았다. 전날 경기가 비로 중단되는 바람에 한화는 이날 디펜딩 챔피언 두산과 두 경기를 치러야 했다. 첫 경기는 전날 3-4로 지던 상황에서 재개돼 부담이 더 컸다. 18연패 중이었던 한화가 20연패를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운동역학 박사로 평소 선수 혹사 반대론자였던 최원호 한화 감독대행도 금기를 깰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며 11일 65개의 공을 던져 휴식이 더 필요했던 왼손 투수 김범수(25)를 재개된 경기의 첫 번째 투수로 등판시켰다. 김범수는 지난해 두산에 평균자책점 2.60으로 유독 강했다.

시즌 초 불안한 모습으로 1군과 2군을 오갔던 김범수는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3과 3분의 1이닝 1실점. 그사이 팀도 6-5로 경기를 뒤집어 연패의 긴 터널에서 탈출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무리 투수 정우람이 동점(6-6)을 허용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9회말 2사 1, 2루의 찬스에서 타석에 선 것은 무명의 노태형(25)이었다. 2014년 10라운드 104순위에 지명된 연봉 2700만 원짜리 선수. 그에게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볼 2스트라이크에서 힘을 빼고 툭 갖다 댄 타구가 두산 유격수와 3루수 옆을 가를 때까지는…. 그의 생애 첫 끝내기 안타는 팀을 수렁에서 건진 ‘구원타’였다.

기세가 오른 한화는 두 번째 경기에서는 한결 자신 있는 모습으로 두산을 시즌 첫 연패에 빠뜨렸다. 또 다른 무명 선수 문동욱(28)은 이 경기에서 통산 첫 세이브를 따냈다.

이날의 주역들은 한화 팬들에게도 낯선 무명들이었다. 노태형은 실력이 모자라 상무, 경찰야구단에 지원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팀 동료 박한결(26)과 날짜를 맞춰 현역으로 동반 자원입대를 했다. 육군 일반병 생활에도 틈틈이 캐치볼이라도 할 파트너가 필요했기 때문. 이들은 군복을 입고도 야구장에 설 ‘그날’을 꿈꾸며 공을 놓지 않고 버텼다. 이들이 모처럼 빛을 보던 날 김태균(38), 이용규(35) 등 왕년의 스타들은 타점과 득점으로 토대를 쌓았다. 베테랑과 신예의 조화로 타오른 불꽃은 수년간 리빌딩을 외쳐온 한화가 그려 온 이상적인 모습이다.

연패 기간 중 온갖 비난을 피부로 느끼며 마음이 아팠다던 노태형은 “승부의 세계에서 지고 싶은 팀은 없다. 또한 못하고 싶은 선수도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제 좋은 흐름을 탄 것 같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동료들과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화의 ‘18연패 탈출’은 단순히 꼴찌 팀이 강팀에 이겨서 관심을 끈 게 아니다. 한 줌의 흙에도 끝내 싹을 틔우는 민들레처럼, 초유의 연패 행진과 감독 자진 사퇴 등 각종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새 싹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대전에서>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wanted@donga.com
#한화#18연패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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