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무시하고 일시키는 행태 없어져야”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6월 23일 1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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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건설공제조합 공동기획] ‘타워크레인 사고 그 후’
타워크레인 사고로 1년째 재활 중인 김흥래 씨… “기본 준수해야 인명사고 없어져”


남한산성이 위치한 경기 성남시 검단산 인근 한 허름한 빌라. 급격한 경사로 중턱에 비스듬히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위태롭다. 현관에서 곧장 빌라로 이어지는 계단은 더 가파르다. 이 건물에 지난해 5월 경기 남양주시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김흥래(57·사진) 씨가 혼자 산다.

“제가 와이프가 없습니다. 아들만 둘 데리고 있는데, 큰아들은 전문학교 올해 졸업반이라 기숙사에 있고, 작은아들은 지금 군에 가 있어요.”

김씨 집은 1층인데도 반지하층 때문에 반층 정도 올라가야 한다. 방 안과 거실은 한낮인데도 어두침침하다. 66㎡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크고 작은 세간이 가득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건만, 김씨는 왼쪽 다리가 부러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불편한 몸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이 좁은 공간에 있으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우울증이 심해지고 속도 답답해지면서 뭔가 확 끓어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무조건 밖에 나가 남한산성을 오르거나 공원을 걸어요. 병원에서도 어떻게든 근력을 키워야 살 수 있다고 하니까요.”

경기 용인시 타워크레인 사고 현장. 지난해 타워크레인 사고로 근로자 16명이 사망하고 33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경기 용인시 타워크레인 사고 현장. 지난해 타워크레인 사고로 근로자 16명이 사망하고 33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 살아난 게 천만다행? 차라리 그때 떠났으면

김씨는 당시 사고로 동료 3명을 잃었다. 그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쳤다. 열흘 이상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깨어난 김씨는 그 충격으로 사고 전후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의식이 돌아오고, 그게 아마 6월 한참 지났죠. 제가 퇴원하기 며칠 전은 조금씩 기억나는데, 그 외에는 기억이 없어요. 그 전의 기억은 아예 없어요. 병실이 5층이었는데,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 그런 기억만 나고….”

김씨는 타워크레인 작업 도중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도, 함께 일한 동료들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퇴원할 무렵에야 알았다. 주변에서는 ‘살아난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거나 ‘천운’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줬지만 그의 기분은 참담하고 처참했다. 그래도 책임져야 할 두 아들을 생각하면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특히 작은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작은애는 너무 어릴 때 엄마랑 헤어져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거든요. 집중을 못 해요, 산만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저처럼 타워크레인 일을 하는 사람은 한 달 중 열흘 이상은 지방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데, 엄마가 필요한 시기에 혼자 있었죠. 제가 아버지로서 역할을 지금까지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씨는 작은아들을 어떻게든 공부시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일념 하나로 재활을 시작했다. 그는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완전히 정상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란 기대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몸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1년여가 지난 지금도 부러진 왼쪽 다리가 30~40도밖에 굽혀지지 않아 목발 없이는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다. 계단이나 경사로를 걷다 턱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더욱이 사고 당시 코뼈가 함몰되면서 시신경이 손상돼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시도 때도 없는 두통 탓에 매일 불면의 밤을 보낸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원해주는 산업재해(산재)에 따른 병원 치료도 4월 말로 끝났다. 요즘 김씨에겐 하루하루가 고통과 번민의 날들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병원 산재 치료를 종료하라 하고, 몸은 말을 안 듣고… 참 그렇더라고요. ‘살아야겠다’ ‘악착같이 살아야겠다’는 욕심이 없어질 때가 많아요. 그냥 맥 놓고 있는 거죠. 이런 말하기 좀 그런데… 차라리 그때, 의식이 없었을 때 세상을 떠났으면 지금처럼 번민도 없었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해요.”

○ 사고 보상금 0원…휴업급여로 근근이 버텨

일은 고사하고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몸도 문제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이다. 사고 보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원청업체는 원청업체대로, 하청업체는 하청업체대로 책임을 피했다. 타워크레인 도급업체는 사실상 파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 치료는 산재보험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생활비는 휴업급여로 근근이 버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가 문제다. 김씨는 현재 산재 장애등급 판정만 남겨두고 있다. 최소한 장애등급 7급 이상을 받아야 장애연금으로 그나마 연명이 가능하다.

1년여 전만 해도 김씨는 이처럼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불의의 사고는 그의 몸과 마음, 인생, 그리고 가족의 미래까지 송두리째 앗아갔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건 당연하죠. 이 몸으로 어떻게든 하려 하는데 애들 교육시키고 나면 내 인생은 또 뭐예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럼에도 김씨는 살아가야 한다.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타워크레인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매년 사고 건수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타워크레인 사고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33명에 달했다. 과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씨가 내놓은 답은 간단명료하다.

“일하는 사람이나 장비업체나 가장 기본적인 것 ‘기본 준수’. 일하는 사람은 안 되는 일이면 안 된다 그래야 하고, 장비업체는 작업자들이 못 하는 상황이면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원청업체는 작업이 하루 이틀 늦는다고 위험을 무시한 채 일을 시키는 그런 행태가 없어져야 하는 것, 그거예요.”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8년 11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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