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시리즈’… 컵스, 108년의 한 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4일 03시 00분


‘염소의 저주’ 깨고 월드시리즈 우승

 염소의 저주가 드디어 깨졌다.

 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오래 우승을 기다려온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컵스는 3일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와의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8-7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1907, 1908년 연속 우승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하며 ‘염소의 저주’에 시달렸던 컵스는 마침내 염소에게 작별을 고했다.

 컵스에 월드시리즈 우승은 끝없는 도전의 무대였다. 1908년 우승 이후 7차례 월드시리즈에 올랐지만 매번 무릎을 꿇었다. 1945년 이후로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그해 월드시리즈(3승 4패로 패배) 4차전에서 경기장에 염소를 데려왔다 쫓겨난 컵스의 팬 빌리 시아니스가 “다시는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머릿속에 저주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1승 3패에서 연승을 거두며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왔지만 염소의 저주는 이날도 컵스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5회 함께 교체 투입된 투수 존 레스터(32)와 포수 데이비드 로스(39)는 각각 폭투와 악송구를 기록하며 손쉽게 2점을 헌납했다. 월드시리즈 4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던 컵스의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차프만(28)은 6-3으로 앞선 8회 2사에 마운드에 올라 동점을 허용했다. 공수에서 맹활약하던 2루수 하비에르 바에스(24)는 9회 1사 3루의 득점 기회에서 스리번트 아웃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2016년의 컵스는 모든 난관을 뚫고 우승을 완성했다.

 컵스를 맡은 지 2년 만에 우승을 안긴 조 매던 감독(62)은 경기 뒤 “과거도 존중하지만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다. 과거에 부담을 가졌더라면 오늘 승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고의 경기를 펼친 두 팀 사이에 저주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며 클리블랜드에도 박수를 보냈다. 10회 2루타로 결승타점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MVP)가 된 벤 조브리스트(35)는 지난해 캔자스시티 소속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맛본 데 이어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게 됐다.

 컵스의 우승에 팬들도 열광했다. 1945년 12세 때 리글리필드의 관중석에서 월드시리즈를 봤던 짐 모위리는 백발노인이 돼 이날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컵스의 우승을 지켜봤다. 시카고도 들썩였다. 리글리필드 주변은 승리의 상징인 ‘W가 새겨진 흰색 깃발’을 흔드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경기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축하를 보내며 선수들의 백악관 초대 의사를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컵스의 지역 라이벌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팬이다.

 역사에 남을 명승부에 걸맞게 갖가지 진기록도 남았다. 컵스는 이번 우승으로 1승 3패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한 역대 여섯 번째 팀이 됐다. 방문경기로 열린 6, 7차전을 따내며 우승을 차지한 건 역대 일곱 번째다. 1회초 컵스의 덱스터 파울러(30)가 친 선두타자 홈런은 역대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처음 나온 기록이다. 컵스의 마이크 몽고메리(27)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세이브를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기록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컵스#염소의 저주#월드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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