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건전재정 두 토끼 모두 놓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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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각 파도에 흔들리는 청와대]
[미래의 늪]‘증세 없는 복지’ 고집… 스스로 족쇄 채워
세수 펑크 4년째… 나랏빚 눈덩이, 복지 지출 조정 노력은 외면
주호영 與정책위장 “증세 필요”… 전문가들도 “여론수렴 나서야”

세금은 잘 안 걷히고, 복지 지출은 급증하는 상황이 현실로 닥쳤는데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복지제도 수술이냐, 본격적 증세(增稅)냐’ 두 갈래 길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비현실적 공약에 집착하다가는 미래의 한국사회가 재정건전성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실제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국세 수입은 218조2000억 원으로 국세 세입 예산(221조5000억 원)보다 3조 원가량 적다. 연말정산 파동으로 정부가 세액공제를 늘리는 방향으로 세법을 고치고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 세수 부족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세수 부족액은 2012년 2조8000억 원에서 2013년 8조5000억 원으로 늘어난 뒤 지난해에는 11조1000억 원에 이르렀다.

올해까지 4년 연속 세수 부족을 피할 수 없게 됐지만 정부는 복지 지출을 조정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올해 예산에서 복지 관련 사업에 드는 지출은 116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9조 원(8.7%) 정도 늘었다. 복지 예산 가운데 정부가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돈이 77조 원(66.4%)에 이른다. 새로운 복지 수요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셈이다.

복지 지출이 늘면서 전체 재정지출 규모는 올해 376조 원에서 2017년에는 400조 원대를 넘어서게 된다. 그 결과 올해 570조 원 정도인 국가 채무는 내년에 600조 원을 넘어선 뒤 2018년에는 7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다고 세금 올릴 생각도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증세는 하지 않겠다”며 “세율을 올린다고 세금이 늘어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도 검증이 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새누리당 내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복지를 더 늘리려면 세금을 더 받아야 하는 것이 틀림없다”면서 “다만 국민 전체의 동의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을 많이 요구하고 있는데 현 세금 체계로서는 곤란하지 않으냐”며 “복지 수준을 낮추든지, 그 다음에 세금을 좀 더 받든지 국민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증세를 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복지제도가 크게 위축되거나 세 부담이 급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지 수술과 증세를 모두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복지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해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계층별 복지 수준과 세 부담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증세에 대한 여론수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 / 장택동 기자
#복지#건전재정#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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