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는 저항 커…‘무상’ 축소가 현실적 대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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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후폭풍]가로막힌 재원확보 방안… 복지수술-증세 선택의 기로에

《 이번 연말정산 사태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增稅) 없는 복지’ 약속이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계기가 됐다. 경직성이 강한 복지 예산은 한 번 늘어나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복지 확충에 쓸 재원을 마련하느라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을 무릅쓰면서 세금을 더 걷는 건 큰 문제를 낳는다. 결국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복지 지출이 더 늘어나기 전에 불필요한 부분을 가려내 미리 구조조정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

○ 복지 지출, 법으로 정한 것만 3년 뒤 100조 원

올해 예산안에서 보건 복지 고용 분야 지출은 115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9조3000억 원(8.7%) 증가했다. 전체 예산(375조4000억 원)의 30.8%다. 매년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복지 예산이 같은 기간 69조8000억 원에서 77조3000억 원으로 크게 늘어난 탓이다.

노인 인구와 공적연금 수급자가 증가하면서 2014∼2018년 복지 분야의 법정 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8.4%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재정 지출 증가율(4.5%)의 두 배에 육박한다. 2018년에는 복지 분야 법정 지출 금액이 96조4000억 원으로 100조 원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와 관련된 64개의 국정과제를 5년 임기 동안 달성하겠다는 ‘공약가계부’를 만들었다. 기초연금 도입,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 재정이 수반되는 52개의 복지 관련 국정 과제를 실천하는 데 79조3000억 원이 필요하다.

돈 쓸 곳은 많아졌지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정부가 거둬들이는 돈은 갈수록 예상보다 줄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세수 결손(정부 예산 대비 국세 수입의 부족분)이 2012년 2조8000억 원에서 2013년 8조5000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결손액이 11조1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보편적 복지에서 맞춤형 복지로

전문가들은 재정을 늘릴 수 없다면 보편적 복지가 아닌 맞춤형 복지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세수는 모자라고 지출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를 고집한다면 재정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급히 조정해야 할 항목으로는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이 거론된다. 재정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부실 보육교사를 양산해 아동학대를 불러일으킨 요인으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0∼5세의 보육료 또는 양육수당을 전 계층에 지원하고 3∼5세 누리과정 지원 단가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만 11조8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작년 말 시도교육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면서 ‘무상보육 디폴트’ 직전까지 갔다.

여야가 대체 예산을 확보해 지원하는 것으로 파국을 막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당장 올해부터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일방적인 증세 논의는 조세저항 야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가 살아나면 세금은 저절로 늘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가능하겠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4%로 0.5%포인트 낮춘 데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 발표 때보다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경상성장률(물가상승률+실질성장률) 6.5%를 전제로 2017년까지 5년간 거둘 것으로 생각하는 세금은 1190조6000억 원이지만 낮은 물가와 저성장을 감안하면 100조 원 정도 덜 걷힐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복지 예산을 줄일 수 없다면 세금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번 연말정산 논란에서 보듯 세금 이슈는 휘발성이 강하다. 증세가 아닌 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조세저항에 부닥친 상황에서 증세 카드를 꺼내들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득세를 전면적으로 인상하거나 부가가치세율, 법인세율을 높이는 식의 급진적인 제도 개편도 어렵다. 조세 전문가들은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의 범위를 줄이고 일부 자영업자가 소득을 축소 신고하는 점을 감안해 간이과세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법인세율 인상 대신 법인세 과표 구간을 현행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1개국이 2단계 세율이나 단일 세율로 법인세를 매기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 것이다.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당장 세율이나 세목에 손을 대는 것보다는 비과세 및 감면을 축소하는 것이 순서상 바람직하다”며 “다만 비과세 및 감면 축소의 경우에도 증세에 준해서 정부가 제대로 홍보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이상훈 기자
#연말정산#증세#무상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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