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앞두고… KTX보다 싸다며 버스출장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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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터미널 화재 이후]
안타까운 희생자들 사연

26일 발생한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졌다. 사고 당일 신복자 씨(70·경기 파주시)는 일산백병원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로 되살아났으나 27일 오후 끝내 숨을 거뒀다. 그는 남편 이성령 씨(77)의 진폐증 치료를 위해 경기 안산의 안산산재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원래 아들들이 번갈아 가며 데려다 주는데 이날은 노부부가 단둘이 나들이하겠다며 길을 나선 뒤 변을 당한 것이다. 아들 이규윤 씨(47)는 “어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불이 나 아버지만 빠져나왔다. 몸이 안 좋은 아버지의 충격이 너무 크다”며 괴로워했다.

중국 국적의 사망자 김탑 씨(37)는 10년간 교제한 중국인 여자친구와 9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김수안 씨(50)는 “큰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주도에서 웨딩사진을 찍겠다며 알아보고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주말을 어머니가 있는 고양시에서 보낸 뒤 직장인 울산 소재 자동차 공장으로 돌아가려고 터미널에 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중국 연변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어머니 김 씨는 남편과 함께 2000년 한국으로 건너와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2012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이번에 큰아들마저 잃는 슬픔을 겪게 됐다. 김 씨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오후 6시가 넘을 때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중국 국적이라고 차별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사망자 신태훈 씨(56)는 울산으로 출장을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신 씨의 딸 수진 씨(25)는 “아버지는 평소 KTX를 타고 출장을 다녔는데 이날은 ‘버스가 KTX보다 4만 원 싸다’며 처음으로 버스를 타려다가 사고를 당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가족들은 고양시 대책본부의 부실한 업무 처리에 불만을 터뜨렸다. 고양시는 27일 오전 유가족들에게 브리핑을 하는 문제로 내부 혼선을 빚었고 합동분향소를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했다가 번복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유가족 측은 “밤새 대기할 장소도 마련해주지 않고 제대로 된 상황 설명조차 없다”며 항의했고, 고양시 측은 “관계 기관의 협조를 구하고 정보를 모으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일산경찰서는 발화 지점에서 작업을 했던 용접공 성모 씨(51)를 비롯해 공사 관계자와 건물 관리자 등 총 12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소방, 경찰, 가스안전공사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단은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 감식단은 화재 현장에서 그라인더(금속 절단기)에 의한 불꽃 흔적을 발견해 화재와의 연관성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용접공과 근처에 있던 배관공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고양터미널 화재#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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