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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Narrative Report]“더 잃을 것이 없다”, 나는 오늘도 배낭을 멘다 ‘지구촌 잡스’를 찾으러…

입력 2014-01-23 03:00업데이트 2014-01-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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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현 씨는 기업가정신을 배우려고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2개국을 돌아다니며 창업자와 기업가, 창업 멘토 150여 명을 만났다. ‘기업가정신 전도사’로 나선 송 씨의 방에는 세계지도와 함께 지구의가 4개나 있다. 공주=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0.19’ 2000년 한남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뒤 받은 첫 학기 학점이다. ‘청림 그룹사운드’라는 음악동아리에서 하루 10시간씩 드럼 연습을 하다 보니 나온 결과였다. 1학년 때 두 번의 학사경고를 받은 뒤 이듬해에는 아예 휴학계를 내고 공연에 몰두했다. 2004년 군에서 제대한 뒤 복학하고 보니 막막했다. 차별받는 지방대에, 학점마저 형편없었다. 한 학기를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려 봤다. 통학하는 시간도 아까워 친구 기숙사에 몰래 얹혀 지냈다. ‘3.9’ 그렇게 노력해서 나온 학점이다.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졸업 때까지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취직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신입사원 공채는 포기했다. 창업으로 경험을 쌓은 뒤 경력직을 노리기로 했다. 내가 사장이라면 ‘사장 같은 사원’을 뽑고 싶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업가정신을 배우기 위해 세계일주를 해 보자는 송정현 씨(32)의 생각은 이때 처음으로 싹텄다. 물론 당장 세계일주를 떠날 형편은 아니었다.

○ “아무것도 없으니까 다행이다”

송 씨는 대전에 있는 한남대, KAIST, 한밭대,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에서 하는 창업교육은 죄다 받았다. “저 학생인데요. 음향 설비 설치 같은 귀찮은 일을 모두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공짜 수강생이 될 수 있었다. 돈을 내고 다녔다면 총 1억 원은 들었을 것이다.

3학년이던 2005년 사업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없었다. 단골 커피숍 사장님이 “커피 뽑는 도구가 싼 중국산이나 비싼 이탈리아산 모두 내 손에 맞는 게 하나도 없다”고 불평한 것이 계기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흑단 나무를 구해서 선반(공작기계)을 돌렸다. 커피 뽑는 도구에 붙일 손잡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칠과 쇠를 이어붙이는 작업은 전문가에게 맡겼다. 제조 원가가 5만 원 정도 들었다. 일단 100개를 만들어 상대방이 원하는 값에 팔았다. 5만 원을 받을 때도 있었고, 20만 원을 받을 때도 있었다.

2007년 시작한 두 번째 사업은 컨설팅이었다.

“사장님은 기술과 현장은 잘 아시지만 사업계획서는 못 쓰시잖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각종 교육 과정에서 만났던 사장님들에게서 1년에 6, 7건의 일을 따왔다. 프로젝트마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3000만 원까지 받았다. 꽤 짭짤한 벌이였다.

○ 졸업 후 10년 안에 할 일

그는 졸업을 앞두고 향후 10년 동안 할 일을 꼽아 봤다. 1순위가 세계일주였다. 서른 살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남은 수십 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의미 있는 여행을 위해 주제를 잡기로 했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대학 후배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기업가정신이었다. 기업가정신이 있다면 자기처럼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여행 자금은 후원을 받았다. 창업 교육에서 알게 된 사장님들이 적게는 3만 원, 많게는 수십만 원씩 도와줬다. 벤처기업협회와 한국소호진흥협회, 한남대, 중앙대 등에서도 후원을 받아 2000만 원을 모았다.

이렇게 송 씨는 3년간 미국, 영국, 중국, 독일 등 12개국을 돌아다니며 기업가와 창업가, 창업 멘토 등 150여 명을 만났다.

○ ‘하해(下海)’ 창업의 바다로 뛰어들다

2010년 11월 18일. 25일 일정으로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칭다오(靑島), 옌지(延吉) 등 4개 도시를 돌았다. 당시 중국엔 모든 사람이 창업을 한다는 의미의 ‘전민창업(全民創業)’ 붐이 일고 있었다.

중국 여행 중 만난 링위후이(凌宇慧·30·여) 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설거지를 하면 50전(약 90원), 바닥 청소를 하면 1위안(약 180원)을 받았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의류공장에서 일도 배웠다.

2005년 푸단(復旦)대 3학년 시절 그는 다니던 외국어 학원 선생님과 ‘로라 패션’을 차렸다.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정장을 대여해주는 사업이었다.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투자액이 컸던 선생님이 손을 떼면서 사업을 접었다.

2007년 링 씨는 남성 속옷 전문몰 ‘내의제국’을 열었다. 속옷은 원가가 낮은 데다 온라인몰이라 운영비도 적었다. 유명 브랜드의 재고를 가져와 정가보다 60% 싸게 팔았다. 남자들은 속옷을 살 때 여자들이 사주는 걸 그냥 입는다는 점에 착안해 여성 고객을 집중 공략했다. 창업 첫해 매출액은 200만 위안(약 3억6000만 원)에 이르렀다. 링 씨는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은 창업을 한 사람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송 씨가 만난 마오타이(茅台)그룹의 백금주(白金酒) 브랜드 천닝(陳저·43) 총경리(대표)는 자신의 도전을 ‘하해(下海)’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바다와 같은 넓은 시장에 뛰어든다는 의미다.

공무원이던 천 총경리는 1996년 직장을 관두고 건강보조식품 회사에서 일하다 2005년 마오타이그룹에 입사했다. 신사업팀을 맡아 3년 뒤 약주인 백금주를 개발했다. 백금주 출시 첫해 8억 위안(약 1440억 원)이던 매출은 2010년 130억 위안(약 2조3400억 원)으로 뛰었다. 술도 약이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이 먹힌 것이다.

○ 좋아하는 일에서 기회를 찾은 마약팔이 소년

송 씨는 중국에서 돌아온 지 두 달 만인 2011년 2월 친구 두 명과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6개월간 러시아, 미국,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 9개국을 돌았다.

그해 3월 영국 런던에서 만난 폴 허지 씨(26)는 원래 마약을 팔던 ‘갱’이었다. 그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집을 나와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쳤다. 일주일에 15파운드(약 2만6300원)를 받는 아르바이트로는 생계가 어려워 마약을 팔았다. 2007년 패싸움을 벌이다 칼에 찔려 쇄골에 큰 상처를 입었다. 왼 손가락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됐다.

기타를 접어야 했지만 음악에 대한 끈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2009년 레코드가게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에게 패션업체의 협찬을 붙여주는 것이었다. 패션업체로서는 자사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고 뮤지션은 공짜로 옷을 입을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아는 뮤지션이 많아 사업도 손쉽게 진행됐다. 무엇보다 버릴 수 없었던 꿈과 관련된 일을 찾은 것이 가장 행복했다. 송 씨는 “그를 보면서 ‘더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가 모든 것을 가질 준비가 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발상을 전환하면 기회가 있어

그해 7월 송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치 스윈스키 씨(28)를 만났다. 스윈스키 씨는 ‘대표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후줄근한 민소매 티셔츠에 힙합 스타일 모자 차림으로 나타났다. 둘은 스윈스키 씨 공장으로 향했다. 그는 동업자 아버지의 물류창고를 얻어 쓰고 있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친구 집 차고에서 창업했듯 말이다.

조악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 몇 명이 롤에 말려 있는 스티커 벽지를 죽 잡아당겨 가위로 자른 뒤 돌돌 말아 원통형 상자에 넣는 것이 전부였다.

스윈스키 씨는 이걸 ‘화이티보드’라고 했다.

“화이트보드가 있는 학교 도서관 스터디룸은 하루에 2시간밖에 쓸 수 없었어요. 집에서도 화이트보드를 쓸 순 없을까 고민하다 아예 만들기로 했습니다.”

앞면이 코팅돼 있어 매직으로 썼다 지울 수 있는 스티커 벽지와 다를 게 없었다. 실제 스윈스키 씨는 중국 인터넷몰 알리바바에서 스티커 벽지를 사다가 화이티보드라는 이름만 붙여 팔았다. ‘집에 못을 박을 수 없는 월세 거주자들이 포스트잇처럼 벽에 붙였다 뗐다 하며 쓸 수 있는 화이트보드’라는 의미를 붙인 뒤 90cm²짜리 2장을 포장해 30달러(약 3만1800원)에 팔았다.

2010년 1000달러(약 106만 원)를 투자해 만든 이 회사는 그해 18만 달러(약 1억908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발상을 바꾸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법이었다.

○ ‘올바른 것’을 하는 게 기업가정신

2차 투어 후 2년이 넘게 지난 지난해 12월 송 씨는 대학생 3명을 데리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15박 1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선 돈 버는 연습을 했다. 2차 투어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통장 잔액이 약 1000원밖에 되지 않아 다급하게 돈을 구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송 씨는 스마트폰 포토 프린터를 가져갔다. 송 씨 일행은 크리스마스에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대표 명소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앞에서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장당 10링깃(약 3210원)을 받았다. 3시간 동안 150링깃을 벌었다. 남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작은 창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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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는 ‘기업가정신문화센터’를 세워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모교인 한남대에 강의도 나간다. 대학 시절 시작한 창업 컨설팅도 하고 있다.

다음 여행지는 인도로 정했다. 중국 다음으로 큰 신흥국인 데다 해외 각국을 돌아다니며 인도 출신 인재를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3년간 여행을 통해 송 씨가 내린 기업가정신의 정의는 꽤 평범했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굳이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고인 물’이 되지 않고 꿈을 실현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기업가정신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공주=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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