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사회

[Narrative Report]바다 품은지 10개월… 쪽빛 야생 친구삼아 훌쩍 커버린 아이들

입력 2014-01-02 03:00업데이트 2014-01-02 09:04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표연봉 선장과 아들 현, 조카 정현 등 3명이 타고 미국 마이애미에서 출발해 카리브 해, 태평양을 횡단한 요트. 표연봉 선장 제공
《 “아빠, 이렇게 포기해야 하는 건가요?”

2013년 12월 11일 새벽 일본 요코하마 남동쪽 175km 해상에서 표류하던 요트 ‘래티튜즈 애티튜즈(Latitudes Attitudes)’의 표연봉 선장(43)은 침통한 표정으로 일본 해상보안청에 구조를 요청했다. 아들 현(16)은 그런 아버지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요트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토파일럿(자동조타장치)은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작동을 멈췄다. 항해를 도와주는 계기판도 고장이 났는지 제멋대로 움직였다. 》  

일본을 거쳐 제주로 돌아가는 마지막 일정을 목전에 두고 10개월 동안의 ‘요트 세일링’을 중단해야 할 위기 상황. 표 선장은 만감이 교차했다. ‘요트를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폭풍우에도 끄떡없이 견뎠는데….’ 표 선장 조카인 정현(17)도 멍하니 흐린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 사선(死線)의 경계에 서다

바다의 공습은 계속됐다. 요트 바닥에는 바닷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9m가 넘는 파도가 요트를 때릴 때마다 부르르 떨리는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 충격으로 표 선장은 요트 밖으로 튕겨 나갔다. 요트와 몸을 연결한 끈인 ‘하니스’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결국 표 선장은 운항을 포기한 채 선실로 이동했다. 차가운 바닷물 때문에 저체온증까지 찾아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일본 순시선이 도착해 표 선장 일행은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러나 요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순시선이 이런저런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가 3일 만에 예인을 시작했지만 100여 m 줄에 매달린 요트는 이리저리 흔들리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예인하는 줄이 끊어졌다”는 연락이 온 직후 요트는 자동 비상위치신호인 ‘이파브(EPIRB)의 울부짖음’을 마지막으로 수장됐다.

미국 마이애미를 출발해 카리브 해를 넘어 태평양을 횡단해 한국으로 돌아오던 요트는 그렇게 표 선장 일행과 작별했다. 이를 지켜보던 현의 머리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수없이 봤던 미국 영화 ‘화이트 스콜(White Squall)’이 떠올랐다. 소년 13명이 범선을 타고 파도, 폭풍과 싸우다 무서운 기상현상인 화이트 스콜을 만나 침몰한다는 내용이었다. 표 선장의 요트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심해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철부지였던 현과 정현은 이번 여행에서 강한 체력과 자립심을 얻었다.

표 선장 일행은 주일 한국대사관 등의 도움으로 지난해 12월 19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012년 12월 18일 인천공항을 떠난 지 1년 하루 만이었다. 손에는 요트에서 탈출하면서 겨우 챙긴 노트북 1대, 위성전화, 여권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바다를 통해 행복, 열정, 그리고 자신감을 배웠다.

○ 더 넓은 세상 속으로

전북 군산이 고향인 표 선장은 1997년 S어학원 관리직원으로 제주에 첫발을 디뎠다. 늦은 나이에 한라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다 TV에서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120일간의 항해기’가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중학교 시절 패싸움에 휩쓸렸다가 쇠망치에 머리를 다쳐 두 번의 뇌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어린 시절 바른 길로 인도하는 ‘멘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그였기에 청소년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청소년 교육과 요트를 연결한 ‘요트 탐험대’를 꿈꾼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요트 관련 면허를 따기 위해 제주대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요트 활동에 나섰다. 어렵게 가족을 설득해 ‘요트를 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었지만 함께 항해할 지원자를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들 현과 요트 항해를 시도하기로 했다. 광주에 있는 조카 정현까지 합류시켰다. 현은 홈스쿨로 고입 연합고사를 본 뒤였고, 정현은 고교 1년을 중퇴한 상태였다.

표 선장은 항해할 때 필요한 장비와 물품을 현지에서 구하기로 하고 미국 마이애미로 떠났다. 요트를 사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요트를 팔겠다는 유대인을 만났지만 계약금만 받고 종적을 감췄다. 간신히 그의 집을 찾아가 항의하다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소송 직전에야 그 유대인은 요트를 넘겼다. 요트를 수리하고 물품을 준비하는 데 3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요트 이름을 ‘어떤 위치(환경, 경험)에서도 행동을 하면 달라진다’는 뜻을 담아 ‘래티튜즈 애티튜즈’로 붙였다. 돛 5개를 달 수 있고 길이 12m, 무게 16t가량으로 8인 선실을 갖췄다. 시험 운항을 마치고 3월 19일 오전 1시, 돛을 올렸고 요트는 마이애미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마이애미에서 바하마를 거쳐 자메이카까지 무사히 도착했지만 표 선장의 감정은 폭발했다. 아들의 일처리가 너무 느리고 게을렀기 때문이다. 요트 청소, 돛 정리 등 어느 것 하나 제시간에 마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할 바엔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표 선장의 불호령에 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현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표 선장은 “포기한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수치심을 이기고 싶다면 발가벗고 뛰라”고 말했다.

현은 처음에는 농담으로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장 실행에 옮기라는 표정으로 아들을 재촉했다. 현은 옷을 모두 벗은 뒤 가로등불 사이로 200m가량 떨어진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건 아닐까?’ 현은 불안했고 부끄러웠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현이 화장실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을 때 표 선장이 나타났다. 아버지 역시 아들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아들을 따라온 거였다.

“실패는 하더라도 포기는 하지 마라, 아들아.”

표 선장은 현을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 무풍지대와 맞서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요트를 타고 출발해 카리브 해, 태평양을 횡단하고 제주로 돌아오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표연봉 선장(왼쪽)과 아들 현. 요트는 침몰했지만 몸과 마음에는 열정과 새로운 희망이 솟아났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자메이카에서 파나마로 카리브 해를 건너는 항해가 시작됐다. 10m에 이르는 너울파도가 요트를 덮쳤다. 키 당번을 맡은 현은 산더미 같은 파도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키를 놓아버렸다. 다행히 요트는 파도를 타고 위기를 넘겼다. 본격적인 태평양 항해를 위한 워밍업이었다.

파나마에서 태평양 폴리네시아 마케사스까지 7000km에 이르는 37일간의 항해에선 바다 위에 만들어진 ‘스콜’이 요트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90도 각도로 요트가 드러눕기를 수차례. 180L짜리 식수통 3개가 터져버렸다. 남은 식수로 버티기 위해 밥그릇, 수저, 냄비 등을 바닷물로 씻어야만 했다.

남태평양으로 지나는 적도에서는 그들만의 의식을 치렀다. 목욕을 한 뒤 짜장면, 비빔면, 팬케이크로 푸짐하게 상을 차렸다. 현은 바이올린, 정현은 플루트를 연주하며 ‘무사항해’를 기원했다. 그러나 바다는 표 선장 일행을 계속 시험에 들게 했다. 뒤이어 찾아온 무풍지대. 태평양 한복판에서 바람이 없는 시간에 갇혔다. 4일 동안 오도 가도 못하는 ‘무풍의 감옥’. 요트는 바람 없이는 항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시간을 즐겼다. 한여름 제주의 바다처럼 잔잔한 망망대해에서 수심 6000m 바다를 향해 다이빙을 하고 낚시를 하며 망중한을 즐겼다. 낮에는 구름들이 액자사진처럼 펼쳐졌고 밤에는 수많은 별이 쏟아졌다.

○ 바다에게서 인생을 배우다

바람이 다시 불면서 항해는 재개됐지만 요트가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거기에 고막이 찢어질 듯한 천둥과 무시무시한 번개가 내리치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태평양의 섬들은 모험과 만남의 연속이었다. 식인종을 걱정해야 하는 섬이 있는가 하면 ‘코코넛크랩(야자게)’을 잡아 배불리 먹었다. 수십만 마리의 새로 뒤덮인 섬에서 새똥 세례를 받았고, 낚시에 걸린 물고기를 채가는 상어를 잡기도 했다.

피지 주변 섬에서는 교도소에서 악기 봉사를 하고 학교에서 한국어교실을 열었다. ‘야생성’이 살아있는 섬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친구가 됐다. 원주민 집을 돌아다니며 숙식을 할 만큼 거리감도 없어졌다. 섬 주민들은 헤어질 때 표 선장 일행에게 코코넛 열매를 한 광주리 싸 주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엔진동력 없이 세계를 반 바퀴나 돌아다닌 미국 하와이 청년, 음식을 나누며 일본어까지 가르쳐준 일본인 부부 등 수많은 세일러와 우정을 나눴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만난 이들과의 만남은 타향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줬다.

○ 또다시 꿈을 향한 항해


표 선장 일행은 11개국에 걸쳐 17곳(섬 또는 마리나 포구)에 정박했다. 일본에서 표류할 때까지 2만5000km를 항해했다. 3명이 키, 돛, 음식 등 당번을 밤낮으로 번갈아 맡으며 제 역할을 다했다. 처음에는 머리를 긁적이며 외국인에게 말도 못 붙이던 현과 정현은 항해가 본격화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넓은 세상을 몸으로 경험하며 얻은 소득이다. 현은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항해 도중 다리, 어깨를 다쳐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한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정현은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해 법조인이 되겠다고 목표를 정했다. 요트를 조종할 때처럼 누군가 일을 바로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표 선장은 요트를 바다에 내줘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통장을 탈탈 털어 비용을 마련해준 아내(46·영어학원 강사)에게 면목이 없다. 그래도 그는 그동안 준비한 요트 해양탐험대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희망하는 학교 학생을 선발해 일본 나가사키, 후쿠오카 등을 방문하고 그 지역 학생들과 교류하겠다는 것.

표 선장은 “요트를 잃어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다시 요트를 빌려서라도 해양탐험대를 활성화하겠다”며 “청소년들이 수시로 변하는 자연환경에 몸을 던져 새로운 세상, 사람,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