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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Narrative Report]열차 다시 달리지만… 파업보다 더 힘든, 동료의 ‘왕따 폭력’

입력 2014-01-09 03:00업데이트 2014-01-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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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장기 철도노조 파업은 끝났지만 코레일 직원들 사이의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직 곳곳에서 벌어지는 배신자 낙인찍기’에 코레일 내부의 분위기는 겨울바람보다 차갑다. 동아일보DB
한 해를 견뎌냈다는 세밑의 설렘으로 모두가 들떠 있던 지난해 12월. 사무실 책상에 앉은 박지훈(가명) 차장의 얼굴에 유독 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만지던 그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은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형.”

워낙 절친해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지내는 회사 후배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 왔다. 후배의 목소리 뒤로 알아듣기 힘든 구호를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와 겨울 바람소리가 계주하듯 들렸다.

“어디냐.”

“밖에 있지 뭐.”

“힘들겠다.”

“안 힘들어 형.”

“그래….”

“형. 형 마음 다 알아. 난 괜찮으니 걱정 말고. 들어가서 봐.”

전화를 끊은 박 차장은 책상 뒤편으로 난 창을 내려다봤다. 거미줄처럼 얽힌 선로가 펼쳐져 있다. 선로 위로 차가운 은빛 선을 새기며 열차들이 소란스레 지나간다. 익숙한 광경이다.

그는 15년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몸담은 간부 직원이다. 파업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회사로부터 친분이 있는 조합원에게 서둘러 복귀 독려 전화를 돌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입을 뗄 수 없었다. ‘이왕 파업에 나간 이상 끝까지 버텨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파업으로 불편을 겪을 국민과 회사를 떠올리면 죄스러웠다. 하지만 동생이 파업 도중 복귀했다는 이유로 ‘배신자’ 소리를 듣는 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겪었던 ‘주홍글씨의 아픔’을 동생은 피해 가기를 바랐다. 할 말을 꺼내지 못한 죄책감과 말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30일. 철도노조의 파업이 종료됐다. 길거리로 나갔던 이들은 속속 현장에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박 차장은 안다. 더 큰 갈등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참여한 자’와 ‘참여하지 않은 자’ 사이에 ‘관계의 단절’이라는 벽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을.

2013년 마지막 달에 있었던 22일간의 최장기 철도노조 파업. 이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배신자’ 낙인, 반복되는 역사

“그거 들었어? ○○역에서 파업에 안 간 사람들 관물대에 누가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놨대.”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차장의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언가 찌릿하게 박 차장의 심장을 움켜쥐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 곳곳에서 직원들 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우리 역 사람들은 서로 며칠째 말도 안 해.”

“밥도 같이 안 먹지 뭐.”

“△△는 다음 달에 가족 결혼이 있는데 울상이더라고. 아무도 안 올 것 같다고.”

끝까지 파업에 참여했던 직원들은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이나 조기에 복귀한 직원들을 철저하게 따돌렸다.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조직 곳곳에서 소리 없는 ‘낙인찍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현재 코레일 내에서 일어나는 가장 보편적인 낙인찍기는 ‘외면’이다. 상대가 투명인간인 듯 행동한다. 함께 같은 식탁에 앉지도 않는다. 식사 때가 되면 파업 참가자끼리 우르르 몰려 식당으로 향한다. 비참가자들은 미안함과 내심 감출 수 없는 서운함에 알아서 자리를 피한다.

비참가자의 경조사는 보이콧 대상이 됐다. 지난달 한 상갓집에서 우연히 만난 파업 참가자와 비참가자가 겸상을 하지 않았다는 소식도 들려 왔다.

박 차장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 12년 전, 그 역시 ‘유령인간’이었다.

○2002년, ‘낙인’의 기억

“안타깝지만 사측과의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밤하늘을 뒤덮은 깃발을 뚫고 노조 간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국대에 모여 총파업을 준비하던 수천 명의 노조원이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노조가 나눠준 침낭을 거꾸로 뒤집어 쓴 채 추위에 덜덜 떨던 박 차장도 함께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2002년 2월의 일이다.

“철도 민영화 중단하라! 중단하라!”

단상에 선 누군가가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박 차장은 구호에 맞춰 장갑을 낀 손을 하늘로 뻗었다. 입사한 뒤 처음 참여한 파업이었다.

파업 첫날 그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함께 일하던 부역장의 전화다.

“괜찮겠어? 대충 하고 들어오지 그래. 애도 있고 회사도 어렵게 들어왔는데. 징계 받으면 나중에 승진도 어려워.”

전화를 끊은 뒤 한참을 고민했다. 박 차장은 남들보다 입사가 늦다. 외환위기 때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난 뒤 서른이 넘어 어렵게 코레일에 입사했다. 아내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파업 개시 이틀 만에 먼저 회사로 복귀했다. 박 차장이 복귀한 다음 날 정부가 민영화 방침을 철회하며 파업은 거짓말처럼 끝났다.

고통은 파업 종료와 동시에 찾아왔다. 파업 종료 다음 날. 출근시간이 되자 누군가 문을 뻥 차며 들어왔다. 파업 참가자들이었다. 박 차장은 쭈뼛거리며 책상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고생했어요. 형. 저는 어제….”

그들은 박 차장을 스치듯 지나 역장에게 복귀 인사를 한 뒤 현장으로 흩어졌다. 그들 중 누구도 박 차장에게 말을 건네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후 박 차장은 3개월간 밥을 혼자 먹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무조건 끝까지 파업 현장에 남을 겁니다. 유령처럼 보냈던 그 끔찍했던 시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선후배 아닌 형·동생, 신뢰의 카르텔

코레일의 조직 문화는 남다르다. 서로 직함이나 선후배로 호칭하는 대신 나이에 따라 호형호제한다. 나이 어린 선배가 ‘형’인 후배에게 말을 놓으면 ‘싹수 노란 놈’이란 소리를 듣는다. 여직원들도 ‘오빠’ 호칭이 자연스럽다.

이런 조직문화의 배경에는 독특한 근무 형태가 자리 잡고 있다. 코레일은 가족보다 동료가 더 가깝다. 함께 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이 먹고 잔다. 취미생활도 함께한다. 직장 동료 외에 다른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근무 시스템 때문이다.

코레일 직원들은 2005년 공사로 전환되기 전에는 ‘철비(철야-비번)’로 일했고, 공사 전환 이후에는 ‘3조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철야-비번은 하루 24시간을 꼬박 근무한 뒤 다음 날 쉬는 형태다. 3조 2교대는 세 개의 조가 주간근무 이틀, 야간근무 이틀을 한 뒤 이틀간의 휴식을 갖는다.

철비 근무 시절에는 하루 종일 일을 하거나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게 생활의 전부였다. 교대 근무가 도입된 후에는 6일씩 근무가 순환되다 보니 일주일 단위로 생활하는 다른 회사 친구들과는 약속을 잡기 어려웠다.

자연스레 동료 직원끼리 친목회나 동호회 모임을 자주 갖는다. 형·동생으로 호칭을 통일하고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며 친목을 다지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철도고, 철도대 시절부터 호형호제하던 사이가 같이 입사해 선후배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다 보니 신뢰가 깨졌을 때 받는 상처도 남다르다. 파업 현장은 서로 간의 신뢰를 확인하는 자리다. 서로 의지해 ‘밥줄’을 내걸고 싸우는 판에 끼지 않겠다는 것은 형·동생의 카르텔에서 빠지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파업이 끝나면 사내 친목회와 동호회가 와해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얼굴 보며 불편해하고 괴로워하기보다 아예 얼굴을 안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친목회 등을 깨는 것이다.

○주홍글씨 떨치러 다시 길 위로

철도는 기관사와 역무, 기술, 정비직 간의 유기적인 소통으로 구성되는 산업이다. 코레일 사측은 파업이 끝난 뒤 조직원의 불통이 자칫 철도 안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직원 단합 분위기에 신경 쓰고 있다.

‘왕따 방지 프로그램’을 가동해 파업 복귀 직원이 원할 경우 근무조를 바꿔주고 있다. 왕따를 주도할 경우 파업 징계를 가중처벌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회사가 아무리 애써도 상처가 쉽게 아물기는 어렵다.

“몸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떨치는 방법은 딱 하나예요. 신뢰를 다시 쌓으면 됩니다. 파업으로 잃은 신뢰는 다음 번 파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재생되지요.”

직원들 사이에는 회사의 징계보다 동료 간의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이 더 무섭다는 공감대가 있다. 선봉에 서 파업을 주도하지 않는 이상 회사에서 잘릴 가능성은 없다. 무탈하게 회사만 다니면 차장까지 승진도 보장돼 있다.

은퇴 전까지 친했던 형·동생과 멀어지며 단절된 인간관계로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회사에 한 번 찍히고 말겠다는 말이 공공연히 돈다.

그렇게 2002년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낙인이 찍혔던 이들이 2009년 파업에 나섰고 2009년 파업 이후 왕따를 당했던 ‘유령인간’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시내 곳곳에서 머리띠를 맨 채 파업의 깃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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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차장은 지금 따돌림을 당하는 직원들이 또다시 낙인을 떨치기 위해 파업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노조가 올가을 또다시 파업의 깃발을 높이 세울 수도 있다. 근무연수만 채우면 승진할 수 있는 ‘자동승진’ 조항과 직원이 원하지 않는 지역으로의 전보를 거부할 수 있는 ‘강제전보 제한’ 조항을 폐지하기 위해 회사 측이 단체협약을 고치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 준다고 나무랄 수도, 상처 받는다고 위로하기도 애매합니다.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파업이 벌어질 때 길거리로 나가 치유하는 수밖에 없지요. 파업이 끝났다고요? 파업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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