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남십계파 조직원 박모 씨(40)가 돈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던 다른 파 조직원 A 씨(당시 40세)를 흉기로 찔러 죽이고 달아났다. 경찰은 강남 한복판에서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른 그를 중요지명피의자 종합수배 명단 1번에 올리고 뒤쫓기 시작했다.
경찰 귀에는 무성한 소문이 들려왔다. ‘베트남으로 도피했다’ ‘강남 성형외과에서 전신성형 받았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다. 박 씨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두 주인공의 얼굴이 맞바뀐 영화 ‘페이스오프’처럼 그의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전하자 ‘페이스오프 수배범’이란 별명이 붙었다.
공소시효 만료를 노리고 도망 중인 수배자들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성형을 택하고 있다. 성형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어디서든 간단한 시술로 얼굴을 바꿀 수 있어 ‘페이스오프’를 원하는 범죄자들에겐 최적의 환경이라는 평가다.
2002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성폭행 행각을 벌이던 허모 씨(46)는 2007년 경찰이 지명수배를 내리자 충북 청주의 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하고 얼굴에 보톡스 시술을 받는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다 수배 3년 만에 검거됐다. 허 씨는 박 씨와는 반대로 10kg가량 체중을 불리고 파마도 했다. 2002년 충북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 중인 신모 씨(49)도 보톡스 성형으로 얼굴을 바꾸고 도망을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도가 난 삼부파이낸스 양재혁 전 회장은 올해 7월 ‘돈을 맡겨둔 옛 부하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가 실종 자작극을 벌였다. 자신이 실종된 것처럼 보이면 경찰이 이 부하를 용의자로 보고 잡아올 것으로 판단한 것. 양 회장의 얼굴은 경찰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요지명피의자 종합수배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배자를 알아본 일반 시민의 제보가 가장 중요한데 국내에서는 전단과 경찰청 홈페이지 모두 사건 당시 증명사진과 간단한 특징만 실어 성형한 수배자의 모습을 알아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명수배 명단에 성형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가상 사진을 올리기가 여건상 쉽지 않다”며 “수배자와 관련된 보다 상세한 정보 제공도 피의사실 공표 논란 때문에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에선 시민이 지명수배자 목록을 보고 해당 수배자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적고 있다.
2012년 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10대 지명수배자 명단에서는 범죄자의 성형 가능성뿐만 아니라 성격, 직업, 자세한 혐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 마약 유통과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수배자의 수배 내용에는 ‘얼굴 성형수술 가능성이 있으며 지문 변경 가능성까지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성형을 했을 경우라도 판별할 수 있도록 문신 형태와 위치, 흉터 자국 등 쉽게 없어지지 않는 신체적 특징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해외에선 성형수술을 수차례나 하고 손가락 지문까지 지운 수배범을 검거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성형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성형수술로 변형된 얼굴을 예측해 수배자 목록에 싣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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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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