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동아일보 선정 2011 올해의 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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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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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던 한 해, 이 책이 있어 버텼다

《전 지구적인 경기불황 속에서 올해 출판계는 좌절한 청춘세대의 아픔을 위로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인문사회, 경제 분야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책이 꾸준히 발간됐다. 동아일보가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출판된 책 가운데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했다. 학계, 예술계, 출판계와 문단의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선정위원들은 본지가 제시한 150권 가운데 각자 10권 안팎의 책을 추천했다. 선정위원들과 동아일보 출판팀의 논의를 거쳐 이 중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무순).》
아프니까 청춘이다 “제목 마케팅의 승리… 과대평가”
중용, 인간의 맛 “도올 저술중 최고작… 과소평가”

동아일보 책의 향기 선정 ‘2011년 올해의 책’ 설문에는 특별한 추가 질문도 있었다.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 △책의 내용은 좋은데 독자나 평단으로부터 과소평가된 책 △책 내용보다 과대평가된 책 △디자인이 좋은 책 등 4가지 추가 질문이었다.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는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리더스북)이 꼽혔다. “책 읽어라, 글 써라 말할 필요 없이 이 책을 슬그머니 건네면 된다”(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법만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기 때문”(구본근 휴먼앤북스 편집장)이라는 설명.

과대평가된 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은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허병두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는 “젊은 세대들에게 여전히 책은 소중한 의사소통 매체임을 강력하게 일깨워 준 책”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이 책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현실을 확인할 젊은 세대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시대의 유행에 편승한 책으로, 제목이 내용의 90%를 차지했다”고 평했고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조건은 알찬 내용보다는 마케팅이라는 점을 증명한 책” “‘하면 된다’의 21세기형 버전으로 허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도 “문명충돌의 장엄한 파노라마와 광신과 폭력의 역사에 전율하게 만든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실망스러운 졸작. 오늘 우리가 왜 십자군전쟁을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역사의식이 없는 책”(이권우 도서평론가)이라는 평도 있었다.

‘과소평가된 책’으론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통나무)이 꼽혔다. “인류정신의 보고인 중용사상의 핵심을 대중적 언어로 번역해준 도올의 브랜드 가치가 돋보인, 고품격 자기계발서로도 손색없다”(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김용옥의 저술 중에 가장 수준작”(허병두 대표)이란 평을 받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의 책 선정위원(가나다순)=강규형(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운기(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구본근(휴먼앤북스 편집장) 구효서(소설가) 김기봉(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중(더숲 대표) 김선식(다산북스 대표) 김선(공연기획사 영앤잎섬 대표) 김형찬(고려대 철학과 교수) 민병도(시조21 발행인) 박문호(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재환(에코리브르 대표)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서진영(자의누리경영연구원장) 손철주(학고재 주간)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렬(더난 출판 대표)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정근(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염현숙(문학동네 편집국장)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교수) 이권우(도서평론가)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이수은(톨 대표) 이인식(지식융합연구소장) 이주향(수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현우(한림대 연구교수) 임진택(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 장은수(민음사 대표)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승(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조남현(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연순(김영사 주간)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분순(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허병두(‘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日학자가 파헤친 훈민정음의 비밀
◇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돌베개

30년 동안 한글을 연구해온 일본 학자가 펴낸 훈민정음 창제원리의 언어학적 분석. 저자는 ‘소리가 문자가 되는’ 놀라운 시스템인 한글의 탄생은 지적혁명이자 세계 문자사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인들도 미처 그려내지 못한 ‘한글 전후사’의 파노라마”라며 “세상을 바꾼 문자, 한국문화사에 일어난 지진해일과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역작”이라고 평했다.
고전의학+실천적 해석의 멋진 결합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고미숙·그린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풍을 몰고 왔던 고전평론가가 새롭게 읽어낸 ‘동의보감’. 고전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현대인이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자 삶의 비전을 탐구하는 책”으로 재해석한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의학과 인문학의 결합으로 우리 안의 치유 본능을 이끌어 낸다”, 구본근 휴먼앤북스 편집장은 “고전에 대한 현대적이고 실천적인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인생의 고통에 맞서는 따끔한 성찰

◇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사계절

상처 입은 마음을 ‘괜찮다, 괜찮다’ 하고 위로하는 글들이 넘치지만 그것은 현재의 문제를 잠시 덮어두게 할 뿐 근본적인 해결로 나아가게 도와주지 못한다. 반면 철학자인 저자는 “좌절한 청춘들에게 모두가 위로를 말할 때 홀로 철학을 이야기한 사람”(장은수 민음사 대표)이었다. “탁월한 대중철학자의 인문학 카운슬링”(김기봉 경기대 교수), “달콤한 위안보다는 인생의 고통에 용기 있게 맞서는 성찰”(신정근 성균관대 교수)이라는 평이 나왔다.
한국에도 본격 스릴러 작가 출현

◇7년의 밤/정유정·은행나무

“드디어 한국에도 촌티 나지 않는 본격 스릴러 작가가 등장했다”(백원근 책임연구원). 치밀한 서사와 장대한 스케일이 담긴 이 소설은 올해 문단에 태풍을 몰고 왔다. “여성 작가라는 생물학적 분류가 무색한 파워풀한 장편소설”(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작가가 발로 뛰어 쓴 성실성이 안겨주는 정보의 힘과 상상력이 탁월”(한기호 소장) “한국형 스릴러 대작. 그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구본근 편집장)는 평이 잇따랐다.
생각없이 살고있는 당신의 이야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청림출판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우리의 뇌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저자는 인터넷 세상에서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진 정보를 따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흘러 다니는 현대인간의 사고, 독서, 글쓰기 능력을 집중 조명한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정보화 시대를 생각 없이 사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아는(Knowing)’ 것보다 ‘생각하는(thinking)’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집이야말로 발명-발견의 집약공간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빌 브라이슨·까치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다.” 저자는 현미경을 들고 집안 구석구석의 정원, 화장실, 지하실, 다락방을 오가며 그곳에 놓인 물건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파헤친다. 집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과 발견이 집약된 공간임을 알려준다. 이수은 톨 대표는 “빌 브라이슨 특유의 관찰력과 입담으로 재조명한 일상적 공간의 가치를 담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김애란에 쏟아지는 기대의 이유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로 각종 상을 휩쓸었던 작가의 첫 장편.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청춘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이립(而立)의 나이에 이순(耳順)의 인생감각을 갖춘 신예의 탄생”(장은수 대표) “추리 같은 장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속도감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김애란은, 이미 한국문학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잡스의 ‘민얼굴’이 궁금하다면…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민음사

“이 책은 그의 죽음만큼 극적이다.”(김기중 더숲 대표) 세상을 바꾼 IT 혁명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10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사생활을 철저히 감춰왔던 잡스가 참여한 유일한 이 공식전기는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다. 임진택 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은 “꾸미지 않고 잡스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추천했고, 정은숙 대표는 “생명의 유한성과 천재적 재능의 무한성을 동시에 일깨운 책”이라고 평했다.
SNS가 직접민주주의를 만날 때

◇닥치고 정치/김어준·푸른숲

“억압이 만든 남자들의 거침없는 정치 수다. 우리 정치문화의 현주소!”(이주향 수원대 교수) ‘나꼼수’ 열풍과 맞물려 정치사회 분야 도서로는 드물게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킨 책. 윤평중 교수는 “팟캐스트를 이용한 SNS와 직접민주주의의 불온한(?) 만남으로, 한국공론장을 확대시킴과 동시에 왜곡시키고 있는 문제의 현장”으로 규정했다. 김선화 영앤잎섬 대표는 “관심과 파장도 한 권의 책이 될 만하다”고 진단했다.
가슴 먹먹한 김훈의 허무적 문체

◇흑산/김훈·학고재

“김훈은 문체 그 자체다.”(김기봉 교수) 소설가 김훈 씨가 ‘남한산성’ 이후로 4년 만에 내놓은 역사소설. 조선의 천주교 박해 시기의 지식인과 민초들의 삶을 그렸다. 감정을 절제하고서도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문체의 저력은 여전하다. 윤평중 교수는 “여전히 매력 있고 강렬한, 그러나 되풀이되는 김훈 문학의 독백”,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19세기 초의 음산한 사회상이 싱싱한 감각으로 묘사된다”고 소개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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