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박상민의 ‘소프트’한국]③“실무형 인재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9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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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무형 인재를 원하는 기업일수록 한계가 명확…
● 본원적 문제해결을 경원시해서는 소프트웨어 강국은 불가능

대기업이 '실무형 인재'를 원할 수록 대학과 학생들은 피상적 지식만을 쌓고 취업시장에 나올 수 밖에 없다. 결국 소프트웨어 산업은 헛바퀴를 돌 수 밖에 없다(동아일보 DB)
대기업이 '실무형 인재'를 원할 수록 대학과 학생들은 피상적 지식만을 쌓고 취업시장에 나올 수 밖에 없다. 결국 소프트웨어 산업은 헛바퀴를 돌 수 밖에 없다(동아일보 DB)
얼마 전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소프트웨어 실무 인재 직접 양성…N사 S/W 아카데미 설립…"

국내에서 가장 포털회사가 실무와 동떨어진 대학 커리큘럼에 실망해 직접 큰 규모의 소프트웨어학원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국내 최대의 전자회사들은 십수 년 전부터 언론을 통해 자주 흘리던 불만이었다.

"요즘 졸업생들은 실무 교육이 너무 안돼 있다. 다시 재교육을 시켜야 하는데…(짜증난다). 학교들아, 좀 제대로 가르쳐달라!"

물론 호통만 쳐온 것은 아니다. 학교에 돈을 좀 쥐어주고 졸업생 취업을 보장하는 등 당근책도 병행해왔다. 학교는 이에 맞추어 커리큘럼을 "실무형 인재" 개발로 최적화 하는 패키지로 보답해왔다. 이 스토리에는 대기업취업 OO% 라는 문구에 따라 변하는 입학생 수능점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존심 굽히는 학교의 애잔함이 녹아있다.

실무 교육이 덜된 학생에게 호통 치는 대기업은 필자도 경험한 적이 있다. 지난해 일이다. 영원할 것 같던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국내 모 대기업 계열사에 면접을 본적 있다. (미국의)먼 도시까지 달려가 임원 면접이라는 것을 보게 됐는데,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 대기업 면접에서 느낀 한국의 현실

대기업 대리 : (생글 생글) 박사님 연구 방향을 좀 소개해 주시죠?
필자: (짐짓 태연) 네 저는 가상화 시스템, 운영체제 등을 개발한 훌륭한 인재입니다.
임원: (처음부터 못마땅한 표정)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게 우리 회사랑 뭔 상관인가요? 당신이 우리 회사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언지 한번 말해 보라고.
나: (급 당황) 아 예..어 저는 삼성의 요번 새로 시작하는 비지니스에…(더듬 더듬) ..
임원: 난 당신의 그 말이 이해가 안 되요…우리가 얼마나 큰 회사인데, 학교에서 컴퓨터 몇대 놓고 조물대던거 가지고 무슨 도움이 된다고? 제대로 얘기해봐요.
나: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근데 왜 내가 혼나고 있지?).

임원분의 호통만 듣다가 면접이 끝이 났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압박면접'이었노라고 날 달래주었고, 실제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입사를 제의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한계상황을 견딜 수 있는 대인배들만 받겠다는 의도였다. 즉 회사는 '공포관리'에 내가 얼마나 견디는지를 시험해본 것이다. 물론 필자는 소인배였기 때문에 가지 않았고, 다음날부터 교수님에게 "제발 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애걸해 미국에 남았다.

■ 대기업 제조 방식으로 찍어내는 '실무형 인재'?

'실무형 인재'란 회사마다 정의가 다를 것이다.

삼성의 모바일 부서라면 임베디드 시스템을 알고, 통신 프로토콜을 구현할 수 있으며, 인도사람 영어를 잘 알아듣는 사람일 것이다. 네이버 같은 포털회사라면 웹, 스마트폰, 게임 프로그래밍 전문가를 이야기 할 것이고. SI라면 DB설계, SW 디자인, '을'로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을 실무형 인재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스펙트럼이 이렇게 다양한 회사들이 학교에게 '실무형' 인재를 가르치라면,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가진 대학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싶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실무형 커리큘럼 세트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나돌고 있는 유머를 떠올려 보면 간단하다. '빅맥 대기업 탤런트 세트' '포털 웹퍼 세트, 'SI 을고기버거 세트…' 아 이제 향후 수년간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정통한 공대생 졸업생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기 그지없다.

소프트웨어의 본질은 프레드 브룩스(Fred Brooks)의 "No Silver Bullet"이라는 논문에서 가장 정확히 다룬 적이 있다. 1960~70년대에 운영체제 같은 큰 소프트웨어가 본격 개발되면서,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고 매번 마감을 넘기면서 나오는 작품들이 하나같이 형편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기계(H/W)는 그렇지 않은데 왜 유독 소프트웨어(S/W)만 그런 것인지 사람들은 분개하기 시작했고, 당대 최고의 실력자 프레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소프트웨어에는 내제된 어려움 (Essential Difficulties)과 우연한 어려움 (Accidental Difficulties)이 있다. 내제된 어려움은, 세상에 어떤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의 특성 때문이다."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을 1등을 빠르게 모방할 수 있는 하드웨어 분야를 발판삼아 성장해왔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분야는 임기응변으로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이다(동아일보 DB)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을 1등을 빠르게 모방할 수 있는 하드웨어 분야를 발판삼아 성장해왔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분야는 임기응변으로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이다(동아일보 DB)
■ 소프트웨어란 '추상적 사고'와 '우연한 구현'의 조합

즉 문제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쉽게 바뀌며 (고객이 요구사항 바꾸듯), 보이는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즉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반면 우연한 어려움들은 HW와 SW의 진화를 통해서 그동안 해결되었다. 우연한 어려움과 해결의 예는 다음과 같다.

△ 0/1 이진법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코딩하기가 쉽지 않다==>C와 같은 고급언어를 활용해라
△ 컴퓨터를 여러 사람이 쓰기 쉽지 않다==>멀티태스킹을 운영체제에 구현해라.
△ A에서 짠 프로그램을 B 컴퓨터에서 못 돌린다==>라이브러리를 통합해라.

좋은 대학교의 컴퓨터 과학(공학) 전공은 본질과 우연한 어려움 두 가지 모두를 해결하도록 교육한다. 즉, 알고리즘, 컴퓨터 이론, 데이터 구조, 소프트웨어 개발론 이런 과목들은 본질적인 어려움을 깨부수는데 필요한 이론들을 가르치는 식이다.

워낙 복잡한 문제를 해결 할 때는 문제를 추상화시키고, 널리 알려진 자료구조로 표현해 낸 후, 이미 알려진 알고리즘 혹은 새 알고리즘을 적용해서 해결한다. 반면 우연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역사적으로 사용된 기술들은 운영체제, 컴파일러, 네트워크 이런 과목들을 통해서 배운다.

■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소프트웨어 경쟁력 생겨

필자의 경험을 통해 보면 미국에선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목에 좀 더 집중한다. 반면 한국은 우연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목에 치중하고 있고, 이에 더해서 대기업은 그들만의 어려움을 해결할 테크닉을 가르치라고 닦달하고 있다. 이른바 '실무형 인재' 추구다.

필자는 역시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교육하라고 주장한다. 왜나면 거기에 S/W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MS 등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창조성이란 원칙 아래 '본원적 문제해결'이 가능한 인재들을 선호해왔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비결 역시 임기응변식 대응과 철저하게 반대로 간 덕분이다(연합/로이터)
구글 애플 MS 등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창조성이란 원칙 아래 '본원적 문제해결'이 가능한 인재들을 선호해왔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비결 역시 임기응변식 대응과 철저하게 반대로 간 덕분이다(연합/로이터)
검색엔진의 예를 살펴보자. 초기 검색엔진 시장은 알타비스타가 장악했다. 이 엔진은 알고리즘은 평범했다. 실제 DEC라는 예전 대기업에서 운영했기 때문에 서버와 데이터가 비교우위에 있었다(즉 요행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반면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 대학원시절 '페이지랭크'라는 뛰어난 알고리즘을 가지고 PC 한대로 시작했다(즉 본질적 문제를 해결했다). 결과는 구글의 압승이었다.

좋은 소스 코드를 만나면 마치 좋은 책을 읽는 듯 마음이 흡족하다. 좋은 소스 코드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숨겨진 마법을 잘 쓴 것이 아닌, 프로그래머의 뛰어난 표현력(자료구조), 논리력(알고리즘), 그리고 디자인(소프트웨어 공학)이 드러나는 그런 창작물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한국처럼 후발주자가 미국 따라가려면 덜 고상한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구현만 하면 된다"

물론 이 방식은 하드웨어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소프트웨어에는 절대 안 된다. 제 아무리 빠른 삼성 CPU를 써도 '버블소트'는 '퀵소트'를 이기지 못한다.

■ 진짜 실무형 인재란 누구일까?

이 칼럼을 높으신 누군가 보고, "옳커니! 그럼 이론 쪽을 강화하는 교육을 하면 되겠구먼…"하고 마음 먹어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학교들에 이론을 전공한 교수들이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동안 정부와 대학의 이런 놀음 때문이다:

++정부와 대학의 가상대화++

정부: 미래한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OOO프로젝트(예:유비쿼터스,그리드,클라우드,스마트폰,월드클래스) 하사하노라. 대학들은 줄을 서도록 하시오."
대학: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정부: "전문가를 프로젝트에 집어넣으시오"
대학: "네, 뽑겠나이다"

문제는 이렇게 뽑은 교수들은 모두 '우연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전문가들이라는 점이다. 그쪽 분야가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절대 다수가 이 성향이라는 게 문제다. 필자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무려 세 번의 정부가 바뀌었는데, 이 패턴은 늘 똑같았다.

소프트웨어는 소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마음(컨셉)이 그 시대의 기술을 만나 표현된 결과물이다.

기업과 정부는 여전히 '마음'은 접어두고 기술에 정통한 사람이 되라며 실무형 인재를 강요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다음 시대의 컨셉이 출현할 때마다 우리는 그럼 새롭게 정의된 실무형 인재를 생산하는, 영원한 '을'의 나라가 되어갈 뿐이다.

기업도 정부도 새마을시대의 실무형 인재, 그 허구를 그만 접어야 한다. 그리고 창조적인 마음을 가진, 진짜 소프트웨어 인재들을 키워내길 소망한다.

박상민 | 트위터 @sm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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