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피의 역습’… 아프간-파키스탄 ‘비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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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대선 결선투표 앞두고 ‘광란의 열흘’ 예고
파키스탄, 클린턴 방문날 市場 테러 90여명 사망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28일 유엔을 직접 겨냥한 테러공격을 감행함에 따라 아프간 사태가 꼬이고 있다. 우선 다음 달 7일 예정대로 대선 결선투표가 제대로 실시될 수 있을지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아프간 주둔 미군 사망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어서 미국 정부의 아프간 추가파병 문제를 결정하는 데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테러범은 파키스탄서 온 학생들”

이날 오전 5시 반경 경찰복을 입은 탈레반 대원 3명이 수도 카불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다. 이들은 자살폭탄테러용 조끼와 AK-47 자동소총,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국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한 보안군 대위는 AFP통신에 “테러범들은 모두 자살폭탄테러 훈련을 받기 위해 파키스탄에서 온 학생”이라고 말했다. 테러범과 경찰이 교전을 벌이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불길과 연기가 피어올랐고 직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오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고 BBC가 전했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 본 한 주민은 “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린 것이 분명하다. 건물 안에 사람들 살점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참혹했다”고 전했다.

외국인들이 주로 머무는 카불의 세레나 호텔도 로켓 공격을 받았다. 대통령궁 외곽에도 로켓이 떨어지는 등 카불에서는 하루 종일 크고 작은 테러 공격이 이어져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경찰은 카불의 주요 거리 곳곳을 즉각 통제했다.

○ 결선투표 무산시키려는 의도

대선 결선투표를 열흘 앞두고 탈레반이 유엔을 겨냥한 테러를 저지른 것은 선거관리 업무를 마비시키고, 주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투표소에 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현재 카불에는 약 2000명의 유엔 직원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선거관리를 돕고 있다.

현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탈레반은 대선이 실시되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탈레반은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결선투표와 관련된 업무를 하거나 투표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8월 20일 대선 첫 투표 실시 전에도 탈레반은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곳곳에서 테러를 저질러 수십 명을 숨지게 했다.

이런 와중에 후보들 간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첫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한 압둘라 압둘라 후보는 26일 부정선거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선거관리위원장 교체 등을 요구했지만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를 즉각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압둘라 후보가 결선투표를 보이콧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FP통신은 28일 “결선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이 난 뒤에도 압둘라 후보는 전혀 유세를 하지 않고 있다”며 의문을 표시했다.

○ 깊어지는 미국의 고민

아프간 추가 파병 문제로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이에 앞서 25일 아프간 주둔 미군 헬기 간의 충돌로 미군 11명이 목숨을 잃었고, 26일에는 탈레반의 공격으로 미군 8명이 숨지면서 10월 아프간 주둔 미군 사망자는 27일 현재 53명으로 월간 기준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숙소에 대한 공격으로 아프간의 혼란이 더욱 가중됨에 따라 미국에서는 ‘아프간에서 희생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논쟁이 거세질 것이라고 AP통신은 전망했다.

○ 파키스탄에선 보복극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파키스탄 방문에 나선 가운데 28일 파키스탄에서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해 적어도 92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노스웨스트프런티어 주 페샤와르의 시장에서 발생한 이날 테러로 인근 사원과 시장 안의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상점에서 화재가 나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 통신은 “불길이 대피하려는 부상자들을 집어삼키고, 무너진 건물에 사람들이 생매장되기도 했다. 여성과 어린이들로 붐비던 시장은 지옥으로 변했다”라고 테러 직후의 끔찍한 상황을 전했다. 사망자 중 여성이 19명, 어린이가 11명 포함돼 있다고 현지 의료진이 전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사람이 많아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대한 복수로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저지른 것으로 파키스탄 정부는 보고 있다. 파키스탄군은 17일부터 약 3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탈레반의 세력이 강한 남와지리스탄 주 일대에서 작전을 진행 중이다. 파키스탄군은 이날 테러가 발생한 직후 남와지리스탄 카니구람의 탈레반 작전기지를 공격해 25명을 사살하는 등 소탕작전이 시작된 이후 모두 264명의 탈레반 대원을 사살했다. 파키스탄 탈레반도 이달 들어 군과 경찰의 주요 시설 등 10여 곳을 공격해 250여 명이 숨졌다고 AP통신은 집계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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