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51>

  • 입력 2009년 8월 4일 13시 42분


앨리스는 물러나지 않고 달려들어 말꼬리의 배에 들러붙었다. 소나 말 혹은 기린이나 코끼리 같은 동물의 하체를 기계로 만들어 붙인 반인반수족의 경우 약점은 네 다리 사이에 있었다.

앨리스가 무릎으로 말꼬리의 배를 찍어 올렸다. 앨리스의 무릎도 기계였기 때문에, 얻어맞은 부위에서는 부서지고 찌그러드는 소리가 났다. 말꼬리가 펄쩍펄쩍 뛰며 앨리스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진드기처럼 몸을 바싹 밀착시켰다. 그리고 다시 무릎 찍기를 계속했다. 말꼬리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려와. 어서 거기서 나와 정정당당하게 붙자."

"개소리!"

"자꾸 이러면 아예 널 박살내 버릴 수도 있어."

"오호라! 좋아, 어디 해보시지. 그 전에 네 녀석 기계몸부터 못 쓰게 될 게다."

앨리스가 다시 무릎 찍기를 시작하자, 말꼬리의 네 발이 휘청거렸다.

"마지막 기회야. 지금이라도 나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웃기지 마."

흐헝!

말꼬리가 콧바람을 잔뜩 내뿜었다. 앨리스는 무릎을 찍어 올리려다가 말고 뺨과 가슴을 말꼬리의 배에 갖다 댔다. 악바리! 미친 년! 빨강머리 앨리스는 한 번 들러붙은 것이라면, 일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놓치지 않는다.

두둑.

갑자기 네 다리에서 동시에 무엇인가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스가 고개를 들고 살폈다. 허벅지를 감싸고 있던 가죽들이 찢어지면서 기계부품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네 다리가 전후좌우로 90도가 넘게 꺾였다.

흐허헝!

말꼬리가 다시 콧김을 내뿜으며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날아올랐다. 이대로 떨어지면 말꼬리의 배에 붙은 앨리스는 떨어지는 말꼬리의 무게에 눌려 납작하게 짓이겨질 것이다. 물론 말꼬리의 기계몸도 크게 훼손되겠지만 그 정도는 각오한 듯했다.

앨리스는 꺾인 오른팔을 둥글게 감으며 말꼬리의 옆구리에 깊이 박아 넣었다. 가죽이 뚫리면서 팔이 어깨까지 쑥 들어갔다. 그리고 왼손을 놓으면서 배를 뒤집듯 몸을 한껏 젖혔다. 기계몸에 박아 넣은 오른팔을 축으로 앨리스의 몸이 빙글 솟구쳤다.

"아악!"

그리고 말꼬리와 앨리스의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강하게 바닥에 부딪힌 말꼬리의 네 다리가 뒤틀리면서 앞가슴으로 기계봉이 튀어나왔다. 바닥에 깔리는 것을 면한 앨리스는 반동에 의해 말꼬리의 옆구리에 꽂았던 오른팔이 뚝 부러져 버렸다. 말꼬리는 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앨리스는 아직 두 다리가 멀쩡했다. 그녀는 말꼬리의 옆구리에 꽂힌 자신의 부러진 오른팔을 확인한 후 질풍같이 말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말꼬리는 두 손을 들어 앨리스의 돌려차기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말꼬리의 상체는 모두 천연몸이었기 때문에, 앨리스의 기계발에 채인 두 팔의 뼈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죽엇!"

앨리스가 다시 뛰어오르며 무릎으로 말꼬리의 턱을 올려 찼다. 말꼬리의 턱이 들리는 것과 함께 육중한 몸이 모로 쓰러졌다.

앨리스는 왼 무릎을 꿇고 깊은 숨을 잠시 몰아쉬었다. 떨어져 나간 오른팔을 감수하고 날아오르느라 많은 힘을 써버린 것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기는 말꼬리도 마찬가지였다. 네 발과 두 팔 모두 완전히 망가진 채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지도 못했다.

앨리스가 천천히 일어나서 말꼬리에게 갔다. 그리고 피 묻은 긴 머리채를 휘감아 들었다.

"미친 새끼들! 네 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조리 밝히고 말겠어."

말꼬리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웃고 있는 것이다. 올라간 입꼬리를 따라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앨리스의 얼굴을 덮었다.

"이, 이런!"

치명적인 독극물을 삼켰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처참한 패배를 자살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수많은 비밀도 함께 가지고 사라졌다. 앨리스가 얼굴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은 후, 말꼬리가 나타났던 진열장을 힘껏 밀었다.

그리고 회전한 진열장 틈으로 들어서다가 멈췄다. 믿기 힘든 놀라운 광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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