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아름다움에서 아름다움으로

입력 2009-07-15 20:05수정 2009-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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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미국 등반가 윌리 언솔드는 인도 북부지역을 트레킹하다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큼’ 아름다운 만년설 봉우리를 발견한다.

“저 산의 이름은 뭐요?”

“난다 데비. 기쁨의 여신이라는 뜻이지요.”

동행하던 인도인 가이드의 대답에 언솔드는 되뇐다. ‘내가 딸을 낳으면 난다 데비라고 이름 붙이리라.’

그래서 이듬해 낳은 딸의 이름은 미국인으로서는 다소 이상한 난다 데비 언솔드. 딸은 자라면서 아버지를 졸랐다. “내 이름과 같은 그 산의 정상에 올라가보고 싶어요.”

딸의 성화를 못 이긴 아버지는 난다 데비의 26번째 생일을 기념해 원정대를 꾸렸다. 그리고 1976년 9월 1일 1차 공격조가 정상을 밟는 데까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2차 공격조에 끼어있던 난다 데비. 베이스캠프부터 난조를 보였으면서도 기어코 정상공격에 나선 그가 제4캠프에서 탈진해버린 것. 이 아름다운 처녀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일주일을 제4캠프에 누워 열에 달뜬 얼굴로 저만큼 보이는 난다 데비의 정상을 바라보며 계속 읊조렸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워요, 너무 아름다워….”

며칠 뒤 미국에 있는 그의 어머니는 인도로부터 날아온 짧은 전보를 받는다.

“시신은 산장(山葬)했소. 아름다움에서 태어나 아름다움으로 돌아갔소(Body committed to mountain. Out of beauty into beauty).”(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난다 데비처럼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워 숨졌다는 산악인 고미영. 10일 정상에 오른 그는 베이스캠프에 이런 무전을 보냈다. “존경하는 전설적인 산악인 헤르만 불이 처음으로 등정한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라 감격스럽다.”

불과 같은 운명을 예감했던 것일까.

1953년 7월 3일 오후 7시. 오스트리아 청년 불은 인류 최초로 낭가파르바트의 정상에 섰다. 등정의 기쁨도 잠시, 밤이 깊어오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산 중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이젠 한 짝마저 잃어버렸다. 깎아지른 듯한 정상 부근에는 쪼그려 앉을 곳도 없었다.

거기서 불은 운명의 결단을 내렸다. 꼿꼿이 선 채 밤을 새우기로 한 것. 그는 ‘잠들면 죽는다’고 스스로에게 외치면서도 깜빡 졸다 깨어날 때마다 8000m의 고소에 두 발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인적인 밤을 보낸 그는 살아 내려왔다. 하지만 올라갈 때 스물아홉 젊은이는 60대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30여 년을 살아낸 하룻밤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불은 인도 카라코람 산맥의 7000m급 봉우리를 오르다 추락사했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셋이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산정(山頂)을 바라보며 떠난 난다 데비나 고미영처럼, 고미영이 존경했던 불처럼 때론 스러질지라도 한계에 도전하며 존재를 더욱 고양(高揚)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를 막고, 여론을 어지럽히고, 대로까지 점거하면서 자꾸만 존재의 바닥을 파고드는 군상(群像)을 대할 때마다 저 설산 높이, 희박한 공기 속으로, 고독하게 올라간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딸의 소식을 들은 고미영의 어머니가 했다는 말이 귓전을 맴돈다.

“미영아,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서 하늘나라로 갔으니, 하늘나라에서도 네가 제일 좋아하는 그곳(산)에 가거라….”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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