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훈]아세안과 다문화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김중순 한국디지털대 총장의 다문화 관심은 지극하다. 인류학자인 그를 ‘다문화 총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김 총장은 보름 전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때 89년 역사의 동아일보가 창사 이래 처음 발행한 영문 특별판에 기고를 했다. 기고문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다문화 현상의 실태와 진단, 통시적 전망까지 아울렀다. 결혼 이주여성들의 고통 등 다문화의 그늘도 털어놨다. 정상회의에 참석한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글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했다.

문화적 교류-소통으로 접근을

아세안 국가들은 예외 없이 다인종으로 구성돼 있다. 열강의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도 대부분 공유한다. 그래서 독립 이후 아세안 국가들은 국경과 민족의 자격을 정하는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한 국가 내에 다른 부족국가들이 산재해 언어나 문화, 역사가 이질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 다른 인종들이 어느 날 열강의 식민지로 함께 편입됐고, 독립 후 하나의 국가로 확정되다 보니 갈등과 분쟁을 거쳐 공존의 길로 들어섰다. 불안정하지만 다문화의 전통은 그만큼 오래고 깊다.

이에 비해 우리는 역사적 경험이나 인종 구성이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단일민족 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처하면서 태동한 민족사관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건국 및 산업화를 거치면서 이를 더욱 강화시킨 기폭제였다. 이런 요인들로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만연했다. 지금은 국경이 열린 글로벌 시대다. 다문화 담론도 우리 사회에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그러나 속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다문화의 길은 머나먼 여정을 남기고 있다.

기자는 3년 전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 하노이 공항에서 도심을 잇는 고속도로를 일본이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으로 건설해 주고 주변 용지를 장기간 무상으로 임차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용지에 공단을 조성해 먼저 자국 기업을 유치하고, 몇 년 뒤에는 베트남 기업도 유치했다. 이런 방식으로 원조 금액의 대부분을 환수했다. 기자가 귀국한 직후 일본은 ODA 방식으로 하노이∼호찌민 구간의 고속철도 건설사업도 따냈다.

우리가 아세안에 접근하는 방식은 제국(帝國) 경영의 경험이 있는 큰 나라와는 달라야 한다. 문화적 교류와 소통을 중시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 전략과 틈새 공략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싹이 트기 시작한 다문화의 뿌리를 우리 사회 다방면에 튼실하게 내리게 하는 것은 이런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노동이나 결혼이라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 한국에 온 아세안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 그래야 아세안과 진심 어린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고, 이들도 우리에게 마음의 문과 함께 교류의 문을 활짝 열 것이다.

정책조율 ‘컨트롤 타워’ 있어야

정상회의 때 이명박 대통령은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며 신(新)아시아 외교정책의 방안을 제시했다. 아세안에 △ODA 4억 달러로 확대 △연수생 7000명으로 증원 △정보통신 분야 중심의 해외봉사단 1만 명 파견 △아세안 학생의 한국 유학 촉진을 약속했다. 연간 수십억 달러를 퍼붓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 형편으로는 파격적이다. 집중과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방향도 맞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 정부 여러 부처와 각 지자체가 쏟아내는 각종 정책과 사업을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 필요는 없겠는가. 지금도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외국인정책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그 역할에 회의적인 사람이 많다. 국회 내에 다문화 관련 법제의 일원화를 위한 연구모임이 18일 발족한다는 것은 아무튼 반가운 소식이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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