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한승주, 한덕수…그들은 왜 권력자의 사랑을 받나?

  • 입력 2009년 2월 2일 1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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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고건이라 불러도 되겠지?"

"아냐, 내가 볼 때는 고건보다 더 완벽한 이력 같은데…."

최근 관가에서 흘러나오는 한덕수(60¤ 전 총리) 주미대사 내정자에 대한 '뒷담화(?)'다. 사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할 총리까지 이미 지낸 터라 '겨우 대사(大使) 자리 꿰찼다'는 악담을 들어도 시원찮을 일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이전 정부와 '색깔'이 확연히 다른 이명박 정부에서도 굳건하게 장관급 자리를 차지한 한 전 총리의 저력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관가에서는 한덕수 전 총리와 한승수 (73) 현 총리, 그리고 지난 1년간 총리와 주미대사 하마평이 나올 때마다 줄곧 이름이 오르내린 한승주 (69) 전 외무부 장관 등 '세 명의 한(韓)씨'들을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최고 권력자의 사랑을 받는 '제2의 고건'으로 꼽는다.

모두 청주 한 씨 집안인 이들은 심지어 이름도 비슷하다. 실제 한승수 현 총리는 한덕수 전 총리의 할아버지뻘이라는 게 종친회의 설명이다. 이들은 1987년 대통령직선제가 채택된 이후 5년마다 정치적 지형이 뒤바뀌는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전문 관료'의 전형들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비결로 모든 공무원들이 선망하는 고위 관직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을까.

● 키워드1 : 영어, 그리고 박사

세 사람의 첫 번째 공통점은 다름 아닌 '영어'다. 그냥 영어 회화 가능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탁월한 '실전 영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 모두 미국 명문대 박사 출신이며 주미 대사를 지냈거나 지낼 예정이라는 점도 공통점.

한승수 현 총리는 '자원외교'에 대처하기 위해 영어와 경제라는 실용적 평가 잣대로 낙점된 첫 외교형 총리다. 영국 요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그는 일찍부터 세계은행 재정자문관을 지낼 정도로 국제적 무대에서 활동했다. 노태우 정부 이후 거의 모든 정부에서 경제 분야 장관자리에 오르내린 그는 2001년 DJ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 재임 중에는 제56차 유엔총회 의장 역할까지 수행하며 반기문 현 UN사무총장을 비서실장으로 거느리기도 했다.

한덕수 주미대사 내정자는 공무원 재직 중 영어를 마스터한 인물로 꼽힌다. 초임 공무원 시절부터 영어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그는 1979년에는 하버드대에서 석사, 84년에는 박사학위를 따낸 뚝심의 소유자다. 그는 박사학위까지 단 2년 반 만에 끝마쳐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괴물'이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

그런 그는 2007년 총리 재임 시절에도 갖가지 영어 관련 일화를 만들어 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단어수첩 사건'이었다. 현직 총리가 틈틈이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 외고 있는 것을 목격한 한 취재기자가 "그게 뭐냐?"고 묻자 "영자신문 보다가 나온 신조어를 정리한 단어수첩인데, 아침저녁으로 암기하고 있다"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한승주 전 장관은 일찍부터 '대한민국에서 제일 영어를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학자다. 1993년 외무부 장관 시절 워싱턴 외교가에선 "한국에서 영어에 능통한 첫 장관이 왔다", "아름다운 영어를 구사한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실제 그는 즉석 대중연설은 물론 서구인들이 영어구사능력의 잣대로 삼는 '수준 높은 조크'로 극찬을 받았다. 물론 그가 젊은 시절 뉴욕시립대에서 8년간 교수로 일했고 고려대 교수 시절에는 10여 년간 뉴스위크에 칼럼을 써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키워드2 : 지역색 No!, 정파도 No!

장관으로 오랫동안 장수하거나 나아가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 위해서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자신만의 독특한 엣지(edge¤ 비교우위)'가 필요하다. 이 세 사람은 고건과 마찬가지로 '지역색이 없고 정파적이지 않다'는 점이 지역주의가 만연한 정치판에서 역설적인 장점으로 손꼽힌다. 자신의 출신 지역이 1인자의 지역과 정파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덕수 전 총리가 주미대사 내정자가 된 1월18일은 원세훈 국정원장(경북 영주)과 김석기 경찰청장(경북 영일)이 내정된 날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주미대사와 두 명의 권력기관장 임명은 다른 성질의 인사로 같은 날 이뤄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TK출신의 두 권력기관장 임명에 전북 전주 출신의 한 총리를 내세워 '지역을 배려한 인사'라는 평을 듣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PK 인사들이 득세하던 노무현 정부 때도 그가 총리에 발탁된 배경에는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한몫 거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출신 지역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린 전력이 있다. 경기고 출신인 그는 DJ정부가 탄생하기 전만 해도 출신 지역을 '서울'로 밝혀왔기 때문.

한승수 총리는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민주국민당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곧바로 지역 등권론을 내세워 집권한 DJ에 의해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누렸다.

전라북도와 강원도는 대표적인 소외지역이면서도 강한 지역색이나 지역기반 정당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서울 출신인 한승주 전 장관은 출신지역 덕을 보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중립적인 정치스탠스로 꾸준하게 총리 후보에 오르내리고 있다.

● 키워드3 : 치열한 자기관리

37세에 전남 도지사로 임명된 고건 전 총리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충고인 "남의 돈 받지 말라, 남의 뒤에 줄서지 말라, 어디 가서 술 잘 마신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3불(不)론'을 평생 지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 높은 자리에서 오래 버티려면 주변 견제를 극복할 압도적인 실력을 갖춰야 하지만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관리 역시 필수적이다.

한덕수 내정자의 자기관리는 공무원 사회에서 널리 알려졌다. 일정이 살인적이라 할 총리 재임시절에도 참모들보다 먼저 일어나 조간신문을 모두 검토한 뒤 회의에 들어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총리 역할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한 고위공무원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사와 싸우고 있을 때 한 총리는 (교차로의) '자동차 꼬리 물기 단속'을 독려하는 회의를 주재하던 모습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다"고 회고한다. 어찌됐건 그 역시 자신의 철학은 최대한 자제하고 주어진 업무에 몰입하는 모습으로 공무원들 사이에서 '배울 것이 많은 선배'로 통한 것이다.

한승주 전 장관은 외교관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한 '신사 장관'으로 불린다. 대북정책의 기조가 뒤바뀌는 외교의 위기 시대에 그는 누구를 섣불리 비난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국익을 위한 외교 본류의 길을 걸었다는 평가도 더해졌다. 그 때문에 대북관이 다른 노무현 정부 때도 과감하게 주미대사로 발탁됐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도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문화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따지고 보면 끝까지 살아남는 고위공무원들의 필수조건은 다름 아닌 체력"이라면서 "굳건한 체력이야 말로 1인자에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제1 조건"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들 세 명의 총리급 인물들 역시 잔병치레 한번 없이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 오고 있는 중이다.

관가에서는 이들이 '직업이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그에 걸맞은 업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화려한 이력에 대한 경탄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업적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할 때라는 얘기다.

● '3명의 한 씨들'의 주요 이력

▽한승수 총리

- 1988년 상공부 장관(노태우 정부)

- 1996년 경제부총리(김영삼 정부)

- 2001년 외교통상부 장관(김대중 정부)

- 2008년 국무총리(이명박 정부)

▽ 한덕수 주미대사 내정자

- 1996년 특허청 청장(김영삼 정부)

- 2001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비서관(김대중 정부)

- 2007년 국무총리(노무현 정부)

- 2009년 주미대사(이명박 정부)

▽ 한승주 전 장관

- 1993년 외무부 장관(김영삼 정부)

- 1997년 유엔(UN)특사

- 2002년 고려대학교 총장서리

- 2003년 주미대사(노무현 정부)

- 2007년 고려대학교 총장서리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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