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석순]원자력-新재생에너지 녹색성장의 엔진으로

  • 입력 2008년 9월 19일 02시 54분


미국은 1948년 펜실베이니아 주 도노라에서 석탄연소로 인한 역사상 최악의 대기오염 사건을 경험한 뒤 원자력발전 개발을 시작했다. 1952년 영국에서 대기오염으로 일시에 수천 명이 사망한 런던 스모그 사건이 일어나자 화석연료의 환경 문제는 더욱 크게 부각됐고 원전개발은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다. 연이은 대기오염 사건에 고무되어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세계 각국에 제의했다.

미국이 1957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장소를 펜실베이니아 주 시핑포트로 택할 때 원자력의 친환경성을 염두에 뒀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기오염 사건이 일어난 펜실베이니아 주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함으로써 화석연료를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100기가 넘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 세계 최대 원전 보유국이 됐다.

공교롭게도 1979년에 같은 펜실베이니아의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물질 누출사고가 일어났다. 인명피해가 없는 경미한 사고였지만 미국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원자력 발전은 미국에서 침체기로 들어섰다. 여기에 더욱 쐐기를 박은 것은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지구촌 최악의 원전 사고였다. 환경대책으로 시작된 에너지가 환경재앙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최근 거론되는 풍력, 태양전지, 조력, 지열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개발은 대부분 1970년대의 제1차 석유파동 직후에 시작됐다.

1973년 10월에서 1974년 1월 사이에 석유가격이 4배로 폭등하자 미국을 비롯한 주요 에너지 소비국은 고유가에 대비하기 위해 막대한 연구자금을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석유가격이 안정되자 생산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연구개발 열정은 금방 식어버렸다.

1979년에 제2차 석유파동이 닥치자 에너지 전문가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신재생에너지의 전성기가 도래한다고 예상했다.

당시 배럴당 30∼40달러에 이른 국제유가는 계속 올라 금방 100달러를 넘으며, 이 정도 가격이면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와 경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1980년대 이후 유가는 계속 오르기는커녕 배럴당 10달러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1990년대 말에 와서 유가가 다시 배럴당 25∼30달러로 오르긴 했지만 이것은 20년 전에 예상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이후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신재생에너지는 활용도가 비교적 저조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는 3무(三無·자원 소모, 대기오염, 폐기물 배출이 없음)라는 장점 때문에 환경성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고유가 대책으로 시작된 에너지가 환경대책이 됐다.

좀 더 적극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원자력의 환경성을,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높여 원래의 개발목적을 찾아야 한다.

안전하고 깨끗한 원자력과 값싼 신재생에너지를 만들 때 지구환경과 세계경제는 함께 살아날 수 있다.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 환경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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