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MB 정부의 ‘비상 사이렌’

  • 입력 2008년 5월 3일 03시 00분


경고음이 울렸다. MB(이명박) 정부발(發) ‘비상 사이렌’이다. 경제성장은 안 되는데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기업의 설비투자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러다가 대선 공약인 7% 성장은커녕 올해 성장률이 3%대가 될지, 4%대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분기부터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다. 당초 얘기했던 6% 성장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처럼 경제 여건이 안팎으로 어려우면, 심지어 1% 성장하면 다행이란 얘기도 있다”고 했다.

빨간 불 켜진 경제지표

경제지표를 보면 상황이 안 좋은 건 분명하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에 비해 0.7% 오르는 데 그쳤다. 3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4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4.1%나 급등했다. 지난해 3월 27만3000명이었던 취업자 증가수는 올해 3월 18만4000명으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설비투자는 전기 대비(對比) 0.1% 늘어났을 뿐이다.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 살리기를 앞세운 MB 정부로서는 비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 ‘비상 사이렌’을 울리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과거 정부의 경우 대개 바깥(경제단체나 연구소 등)에서 사이렌을 울려도 쉬쉬하거나, 경제에는 심리적 요인도 중요한데 왜 위기를 조장하느냐며 으름장을 놓기가 일쑤였으니 말이다.

‘한 자락 깔고 가자는 것’이란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충격 방지용이란 얘기다. 어차피 대내외 경제여건으로 보아 좋은 경제성적표를 내놓기가 어려운 만큼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쓰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분석도 있다. 여대야소가 되는 6월 18대 국회에서 지난해 정부가 쓰고 남은 돈 중 4조8000여억 원을 추가경정예산으로 잡아 집행한다는 것이다. 추경 편성에는 효과에 비해 물가 상승의 부작용이 크다는 반대론이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주장해온 작은 정부, 민간 중심 경제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강만수 재정부 장관으로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경제부총리 급’ 주무장관으로서 실적을 내놓아야 한다. 추경 편성은 않겠다던 이 대통령도 강 장관의 설득에 돌아선 듯하다. 한나라당 내 추경 반대론자인 이한구 정책위의장의 임기도 5월 말이면 끝난다. 걸림돌은 거의 치워지는 셈이다. 필요한 것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비상 사이렌’이다.

하기야 어려운 경제 사정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현실적 대책을 찾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실제 위기인데도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이 단단하니 걱정 말라고 하다가 나라 경제를 통째로 들어먹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 문제는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MB 정부가 ‘성장 조급증’에 빠져 대증요법(對症療法)식 단기처방에 매달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효율과 실적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CEO)형 리더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기업 CEO와 달라서 하루아침에 뭔가 뚝딱 해치우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위험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CEO 대통령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지만 이 대통령의 CEO형 체질이 변하기란 쉽지 않을 터이다. 그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지만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 모델’에 더 친근감을 느낄지 모른다. 시장에 맡겨놓기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물가도 잡고, 경기도 살리고, 당장의 실적도 올리고 싶은 듯하다. 경제만 살린다면 그 방법이나 절차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성과주의를 실용주의로 생각하는 듯도 싶다. 물론 그 바탕에는 경제를 모든 가치의 상위에 두는 다수 국민의 요구가 있다.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의 CEO형 리더십’을 선택한 게 아니던가.

‘성장 조급증’은 위험하다

하지만 역시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얼마 전 “이명박 정부는 서민과 중소기업,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이 없다. 수도권 규제완화에만 치중해 지방에 대한 배려가 소홀하다. 시장에 대한 믿음이 없어 노골적인 개입, 관치(官治)를 하려 든다”고 비판했다. 이 또한 성장 조급증에 몰입된 CEO형 리더십의 한계가 아닌지? 행여 그렇다면 MB 정부에 대한 ‘비상 사이렌’은 진작 울린 셈이다.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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