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종석]‘기부’는 정말 힘이 세다

  • 입력 2008년 4월 8일 02시 53분


이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요즘 사정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기부 주인공은 여전히 김밥 할머니, 떡장수 할머니, 삯바느질 할머니들이다. 명색이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대국이라면서 언제까지 기부를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할머니들께 맡겨 놓을 것인가. 기부를 안 하는 풍토도 문제지만 잘못된 기부는 더 큰 문제이다.

소액 상시기부 확산 반가워

어째서 재벌총수들은 모양 사납게 교도소 담장 위에서 거액 기부를 약속하고, 대통령 후보는 하필 선거운동 기간에 사회로의 재산환원을 발표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국회의원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재산 많은 후보자에게 그 재산을 출연할 의사가 없는지를 강요하듯 물었고 결국 “있습니다”라는 억지 춘향식 답변을 얻어냈다고 하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고 답해야 하는지는 더욱 모를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은 기부는 물의를 일으키거나 의혹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지나 않을까, 행여 이 사회가 유전무죄를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게다가 그런 약속들이 안 지켜지는 경우도 허다하니 기부약속은 다급할 때 하는 식언이라는 등식이 통념화되지 않을까도 염려된다. 우리의 사회지도층에게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의 거액 기부 같은 통 큰 선행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저 국민에게 약간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인데 귀감이 되기는커녕 왜들 순수한 뜻으로 선행을 하려는 사람들마저 못 나서게 도처에서 재를 뿌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우리 사회의 기부는 개인보다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그 기업들의 상당수는 자발적이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력에 떠밀려 기부를 세금 내듯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기업 홍보를 위해서 하는 연례행사성 기부라도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그래도 연말연시나 돼야 온 사회가 주일날 교회 가듯 일제히 기부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어려운 이웃이 때맞춰 가며 어려운 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이상적 기부문화는 대기업 몇몇이 큰돈을 내는 다액소수의 기부문화가 아니라 작은 성의라도 사회의 구성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하는 소액다수의 문화이다. 또 누구의 강요로 하는 기부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기부이고 연말연시에 몰아서 하는 기부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하는 상시기부이다. 물론 이런 기부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근 희망적인 조짐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 발견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양극화, 갈등없이 풀 수 있어

예를 들어 최근 화제가 된 뷰티풀 도네이션 프로그램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기부 방식으로 우리의 기부문화를 선진화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승진, 생일, 졸업 등 경사를 맞이한 사람에게 축하의 뜻을 표하고자 하는 이가 당사자 이름으로 장애인종합복지관에 기부를 하면 그곳에서 감사카드와 세액공제용 기부금 영수증을 보내주고 있다. 축하도 하고 기부도 하는 일거양득의 제도다. 아름다운 재단이 주도하고 있는 1% 나눔 운동이나 포털사이트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기부 프로그램도 소액기부, 상시기부 문화를 자리 잡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런 노력들이 축적되어 갈 때 기부문화도 조금씩 변화해 나갈 것이다.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 문제를 갈등 없이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인 기부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진정한 선진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 학장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