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문화 태평고’의 둥둥 소리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08분


새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가 다음 달 열리는 취임식에서 사용할 엠블럼 ‘태평고’를 최근 발표했다. 박범훈 위원장은 “태평소와 북을 모티브로 해서 대한민국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희망의 울림소리가 미래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태평소의 흐드러짐과 북의 울림, 전통 문양이 떠오르는 디자인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과 더불어 ‘미래의 염원을 상징하긴 하지만 출발부터 태평을 말하는 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연일 쏟아내는 정치 경제 교육계의 현안이 태평스럽게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새 정부가 혹시나 문화를 ‘태평의 소리’를 내는 상징물 정도로만 보면 큰일이라는 우려도 들었다. 지난 정권에서 초래된 문화예술계의 현안이 불거지고 있는 데다 문화를 경제나 정치와 분리해 생각하는 것은 ‘역주행 사고’가 아닌가.

지금 문화예술계에서는 새 정부의 문화 정책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인촌 중앙대 교수 외에 인수위에 문화예술전문가가 없고 이명박 당선인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화가 거의 언급되지 않아 서운하다는 이가 많다. 강한섭 서울예대 교수는 “경제대통령에 맞먹을 만한 문화대통령의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한 말을 살펴보면 그런 걱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이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문화소프트웨어가 강한 나라를 세우겠다”고 했지만 정작 밑그림이 나오지 않는 까닭이다. 당선인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 문화예술인과의 정책 간담회에서 “7% 경제 성장의 주역이 문화”라며 “기업처럼 국가 예산을 운영하면 20조 원을 절감할 수 있고 이 돈을 문화와 복지에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쯤이면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문화 활성화 방안의 윤곽이라도 나와야 하는 게 아닐지.

문화예술계의 또 다른 과제는 “현 정권 내내 국가와 이념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바람에 문화 시장과 소비자의 몫이 줄었다”(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는 점이다. 문화 정책과 지원이 ‘코드’로 이뤄지면서 문화예술계의 작가와 작품도 자생력을 잃어 버렸다는 지적이다. 현 정권이 어느 분야보다 치밀하고 치열하게 문화 헤게모니를 행사해 온 결과다.

그런데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유 교수나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의 말을 들어 봐도 문화 산업에 대한 시장 논리와 전통 문화에 대한 보호 논리의 동시 추구, 문화예술의 수도권 편중 개선, 전통 문화의 유지 발전 등 원론에 그치는 발언이 많다. 오히려 현 정권에서 ‘문화 권력’ 중 하나였던 민예총이 최근 토론회를 열어 문화운동의 새 프레임을 모색하려는 게 더 눈에 띈다. 민예총이 5년 전 이맘때 마련한 토론회에서는 “기득권 세력이 발을 못 붙이게 하고 진보세력이 대거 전진 배치되어야 한다”는 ‘선언’이 나왔다.

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를 관류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지배하는 힘이다. ‘위대한 문화는 정치의 몰락이다’라는 말처럼 문화는 산업적 가치를 넘어 사회 통합의 토대를 이룬다. 경제대통령에 못지않은 문화대통령을 기대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문화 태평고’의 ‘둥둥 소리’를 듣고 싶은 이가 한둘이 아니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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