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강남엄마 따라잡아? 말아?

  • 입력 2007년 7월 18일 20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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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화제다. 김원희 작가가 원래 코미디작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과장된 연기와 코믹한 전개가 드라마에 몰입되기보다는 실소(失笑)를 터뜨리게 한다. 그래도 우리의 교육현실을 꼬집고 적나라하게 풍자한 게 인기 비결이다. 그것도 한국인에게 가장 예민한 학벌과 빈부격차, 촌지 등 대 놓고 말하기 거북한 소재를 건드렸다.

남편을 잃고 ‘전교 1등’인 중학생 아들을 희망 삼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고졸 강북엄마 현민주(하희라 분)가 아들이 영어경시대회에서 강남학생들에게 밀려 참담한 성적을 받아 오자 물불 가리지 않고 강남에 이사 가서 겪는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기 때문에 강남엄마들의 모습이 왜곡됐다느니, 계층갈등을 조장한다느니 하는 지적엔 동의하지 않지만 드라마가 보여 주는 우리 교육의 현실만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강남’은 자식의 성적을 통해 엄마의 자긍심을 보상받으려는 욕망의 배출구이면서 온갖 부조리가 판치는 교육 공간으로 설정된다. 민주의 아들 진우가 강남 최강중학교에 전학 온 첫날, 반 아이들과 벌이는 수학문제 풀기 경쟁은 10대의 무한생존게임을 다룬 일본영화 ‘배틀로얄’을 연상시킨다. 민주의 친구 이미경이 교육청 관계자의 귀띔을 받고 최강중 교장에게 ‘돈가방’을 전달하고 ‘쌈짱’ 아들을 전학시키는 대목에선 학원비리의 냄새도 난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에 관한 고민은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유에스에이투데이지는 알파맘(Alpha Mom)과 베타맘(Beta Mom)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파맘은 자녀교육과 가정생활에 다걸기(올인)하는 ‘강남엄마’들이다. 베타맘은 자녀교육에 애면글면하지 않고 자신의 심신을 가꾸는 데 더 관심을 갖는 엄마들이다.

과보호와 빡빡한 학원 강행군이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이를 ‘강남방식’으로 키우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강남구 대치동에 줄줄이 들어선 학습클리닉(소아정신과)을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어린 나이에 과중한 학습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싫증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맘껏 뛰어놀도록 해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 주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공동육아나 대안학교도 그런 교육관의 산물이다.

엄마들의 양육 방식이 강남엄마 같은 관리형이건, 베타맘 같은 방임형이건 미국과 확연히 다른 게 있다. 미국의 알파맘, 베타맘은 부모의 인생관과 철학에 따라 결정되지만 한국의 그것은 교육적 효과, 입시 성적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 두는 것이 입시에 유리하다면 강남지역도 베타맘으로 넘칠 것이다. 하지만 강남지역의 높은 명문대 진학률은 입시전쟁에서 강남엄마의 방식이 먹히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무작정 강남엄마 따라잡기에 나선 민주를 드라마 밖의 현실로 끌어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2008 입시제도 아래서는 진우가 강북에 남아 전교 1등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육 뒷바라지는 역시 정보력이 관건인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있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는 게 무슨 죄냐”고 울부짖는 민주에게 한 가닥 연민이 솟구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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