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의사 5년간 1330명 줄었는데…한의사는 94명 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11일 18시 09분


한의사 김모 씨(37)는 군 제대 이후 한의원 개원을 준비하다가 지난해 인천에 있는 한 요양병원의 ‘페이닥터’(봉직의)로 취직했다. 그는 “몇년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겹친 데다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갈수록 높아져 개원을 포기했다”며 “요양병원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게 더 편하고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한의원 시장이 포화 상태인 데다 고물가 등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지면서 김 씨처럼 요양병원에 취업하는 한의사가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는 1300명 넘게 감소한 반면 한의사는 100명 가까이 증가했다. 의료계는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의사가 대처하기 힘들다고 비판하는 반면 한의계는 약물 처방 외에 문제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미용 의료, 난임 치료 등을 두고 대립해 온 양측의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사와 관련없는 요양병원 자료사진.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기사와 관련없는 요양병원 자료사진.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요양병원 1곳당 한의사 1.5명으로 늘어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일반의 포함)는 2020년 말 6000명에서 지난해 9월 말 4670명으로 1330명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의사는 1877명에서 1971명으로 94명 늘었다. 이 기간 전국 요양병원이 1582개에서 1311개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요양병원 1곳당 일하는 한의사가 1.19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한의원 시장이 포화 상태에 빠지면서 한의원을 폐업하거나 개원을 포기하고 요양병원으로 눈 돌리는 한의사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2024년 한방병원 폐업률은 7.19%, 한의원 3.63%로 의원급 의료기관 폐업률(2.73%)보다 훨씬 높다.

자동차보험 진료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한의원이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추나치료나 침, 첩약 등으로 수익을 내는 한의원이 많은데, 최근 금융감독원은 교통사고 경상 환자가 8주를 넘겨 치료를 받으려면 심의를 받도록 하는 ‘보험업 감독 업무 시행 세칙 개정안’을 예고했다.

요양병원 입장에서도 일반의사보다 봉급이 저렴한 한의사를 고용하는 게 이득이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는 통상 1000만 원대 월급을 받는다.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일반의도 당직을 전담하는 경우 비슷한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한의사는 전문의약품 처방을 할 수 없어 500~600만 원 선에서 고용할 수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고령층이 선호하는 부황이나 뜸 등을 시술할 수 있어 당직의로 한의사를 고용하는 요양병원도 있다”고 했다.

의료계 “응급상황 시 위험” vs 한의계 “문제 없어”

대한한의사협회 등 한의계는 전문의약품 등 약물 처방 이외엔 의료 행위에 제한이 없어 요양병원 취업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요양병원에서 필요한 비위관 삽입이나 유치도뇨관(소변줄) 교체, 수동식 인공호흡기(앰부) 등에 대해선 협회 추가 교육을 통해 실습을 충분히 한다는 것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응급의학 전문의도 거의 없다”며 “한의사나 일반의의 역할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의료계는 한의사가 요양병원에서 일할 경우 응급상황 대처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12월 각 시도 지부에 공문을 보내 ‘한의사 대상 추가 교육에 의사가 참여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의협 관계자는 “택시기사가 운전을 할 줄 안다고 포크레인을 작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한의사가 짧게 추가 교육만 받고서 요양병원에서 의사가 해야 하는 모든 업무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의사의 업무 범위가 의료법상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아 의료계와 한의계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료계와 한의계가 현재 별도로 운영되고 있는데 환자 안전 등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의사#요양병원#페이닥터#의료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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