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불법 사무장 병원’ 범행, 10개월 허비하다 檢 보완수사 끝에 드러나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25일 17시 08분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내가 너한테 (의사) 면허 대여해준 것….”

지난해 12월 부산동부지청의 검사실. 검찰에 압수됐던 사건 관계자 휴대전화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녹취 파일이 발견됐다. 부산에서 운영되던 한 의원이 실제로는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운영해 온 ‘불법 사무장 병원’이라는 핵심 증거였다. 부산동부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이승학)는 이달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면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약품을 대리 처방한 혐의(의료법위반·마약류관리법위반) 등으로 A 씨 등 의사 출신 3명을 기소하고, 대리 처방을 받은 당사자 3명을 약식기소했다.

이 사건은 경찰이 2024년 11월 불송치 결정을 내린 뒤로 암장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의 이의신청을 접수받은 검찰이 두 차례 보완수사 요구를 하고, 직접 보완수사를 나선 끝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 사이 10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 2번 보완수사 요구했지만 결국 직접 수사

2024년 경찰에 “중년 여성 B 씨가 병원에서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 명의로 의약품을 대리 처방받았다”는 고소 고발이 접수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경찰은 고소인을 제외하고 진료기록부상 약품을 처방받은 것으로 돼 있던 다른 명의자들로부터 “내가 직접 병원에 가서 약품을 받은 것이고 대리처방이 아니다”라는 진술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경찰은 같은 해 11월 사건을 검찰로 넘기지 않고 수사를 종결하는 불송치 결정을 했다.

하지만 고소인의 이의신청을 받아 검토하던 검사는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명의자들이 처방 당일 병원 근처에 간 적이 있다는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 기록 등 객관적인 증거를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받은 경찰은 명의자들을 불러 대면조사를 해 같은 진술만 받은 뒤 사건을 다시 검찰로 넘겼다.

담당 검사는 두 번째 보완수사 요구를 내렸다. 이번에는 경찰이 명의자 여럿 가운데 한 명의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 기록을 확인했다. 그 결과 해당 명의자가 처방 당일 병원 인근에 방문한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명의자가 경찰에서 “대리 처방이 아니다”라고 했던 진술이 거짓이었던 것. 경찰은 이후 대리처방 혐의를 받던 중년 여성 B 씨를 불러 일부 범행에 대한 자백을 받은 뒤 사건을 다시 검찰로 보냈다.

경찰의 보완수사 결과를 받아 든 검사는 지난해 9월 중순 직접 보완수사에 나섰다. 검사가 2차례 보완수사를 요구해 사건이 검찰과 경찰을 오가는 사이 이미 10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시간이 더 흐를 경우 객관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증거가 사라져 버릴 것을 우려한 것.

● 보완수사 끝에 ‘불법 사무장병원’ 실체 밝혀져

검사는 먼저 B 씨에게 발급된 처방전과 진단서 내용부터 확인했다. B 씨가 받은 약은 수면제인 졸피뎀과 다이어트약과 함께 처방되는 에티졸람이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규정돼 개인별 처방 일수가 제한된 약이었다. 이 약을 B 씨에게 반복해서 대리 처방해 준 의사도 범행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사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검찰 조사에서 B 씨는 자신에게 약품을 처방해 준 의사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B 씨의 범죄 전력 등을 확인한 결과 과거 의료법위반 혐의로 의사면허가 취소된 A 씨와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은 기록이 있었다. 이미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던 사건이었다. A 씨가 과거 주변인에게 B 씨에 약품을 처방한 병원에 대해 “내가 병원 주인”이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B 씨에게 대리처방을 해준 병원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운영 중인 ‘불법 사무장 병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검찰은 병원과 관계자 주거지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현장에선 의사 면허가 취소된 A 씨가 이 병원을 실제 운영해왔고, 다른 의사들은 일정한 대가를 받고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의심되는 증거가 확인됐다. A 씨가 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B 씨를 비롯한 최소 3명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대리 처방해 준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사건을 송치받은 지 4개월 만인 올해 1월 주범인 의사 A 씨를 구속했고, A 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올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공소청이 신설되는 가운데 “경찰이 넘긴 사건에 대해 공소청이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검찰 안팎에선 커지고 있다. 형사 사건을 주로 맡아온 한 변호사는 “경찰이 불송치 결정한 사건에 변호사가 이의신청해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하더라도 기존의 결론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경찰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 공소청이 다시 들여다보고 직접 보완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불법 사무장병원#대리 처방#의료법 위반#보완수사#검찰 수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