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원희]공약, 실천하고 계십니까?

  • 입력 2007년 7월 3일 03시 02분


지방선거를 치른 지 1년이 지나간다. 당선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1년은 공약을 실천하기에 짧지 않은 기간이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시장과 도지사의 전체 공약 1657개 중 1년 만에 완료했다고 밝힌 사업이 166개다. 10%만 끝났다. 실제 예산을 들여 진행 중이라고 밝힌 사업은 1362개다. 나머지 129개 공약은 사업이 보류됐거나 타당성 분석 단계, 또는 사업비가 투입되지 않은 채로 막연히 추진 예정 상태이다. 1년 만에 공약의 7.7%가 행방불명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비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1년 만에 7.7%가 행방불명

시장과 도지사는 후보일 때에는 혁신적인 거대 담론을 생각하지만 당선돼서 현실 조직에 들어가면 관료적 절차에 얽매이기 쉽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소모적인 일에 묻혀서 정작 생각했던 거대 담론을 잊는다.

시장과 도지사의 능력과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억울해할 수 있다. 선거 과정에서는 시민의 처지에서 고려했던 공약이 조직 내부에 들어가면 법규 선례 예산 인력의 제약 요인에 갇혀서 무기력 상태에 빠지기 쉽다. 1년은 본격적인 평가를 받기에 이르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1년을 지나면서 공약 실천 여부를 평가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무기력을 지나 무관심에 빠질 우려가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오랜 기간 행정을 수행한 관료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시스템을 갖고 있다. 1년이란 기간은 외부의 참신한, 그러나 설익은 논리가 오랜 기간 존재한 관료제의 두터운 논리에 설득당하는 기간일 수 있다. 시민은 멀리 있고 공무원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애완 관료제(pet bureaucracy)라고 부르는 학자가 있다.

대통령은 외부에서 충원한 장관에 의해 자신의 정책을 집행할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은 외로운 행군을 해야 하므로 더 힘든 측면이 있다. 절차적인 행정에 노련한 공무원을 새로운 시대정신의 개혁성으로 설득하면서 일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공약 사업 중 일자리 창출, 기업 유치, 지역 역점 산업 육성 등 새로운 발상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가 발목 잡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미의 정치 체제를 설명하는 개념 중에 실패병이 있다. 잦은 혁명을 통해 정부가 내건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또 정책이 단절되는 과정에서 시민이 정부 정책에 불신을 갖는 현상이다. 이런 불신이 국민 사이에 내재화해서 국가 사회 전반의 위기를 초래했다.

지방선거가 반복되면서 공약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으면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냉소주의가 출현할 우려가 있다. 지난 선거 당시 전개된 매니페스토 운동의 결과를 분석하면 정당과 재선 여부가 당선에 유의미한 변수였다. 이에 못지않게 공약의 구체성 측정가능성 달성가능성 적실성 시간계획성을 나타내는 스마트(SMART) 지수에 대해서도 유권자가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공약에 대한 시민의 기대 수준이 높다는 증거다.

불가능한 사업도 기록 남겨야

이제 자신의 공약을 차분히 돌아볼 시기이다. 공약별로 추진 일정을 재정리해야 한다. 지역 내부에서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 다른 자치단체와 협력해야 하는 일, 중앙정부의 협력이 필요한 일 등으로 구분해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사업에 대한 냉철한 반성도 병행해서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당선자의 임기는 4년이지만 지방행정은 연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자치단체장이 앞으로 다가올 3년을 생각하면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초석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이원희 한경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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