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6월 23일 03시 0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부장검사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바둑과 포커 모두 상대방의 수를 읽어 내는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지만 바둑은 상대의 수와 자신의 수 모두를 반상(盤上)에 공개적으로 보여 주는 게임.
하지만 포커는 자신의 수를 드러내지 않는 능력이 중요하며 상대방을 속이는 능력(bluffing)도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표정 하나 일그러뜨리지 않는 사람을 ‘포커페이스’라고 할 정도로 통상 상대방의 패를 반 이상 모르고 게임을 진행한다.
이 부장검사는 정치가 포커처럼 진행된 대표적인 사례로 2002년 ‘기양건설 비자금 사건’을 들었다.
당시 야당의 유력 후보이던 이회창 씨의 부인인 한인옥 씨에게 건설사 측이 1997년 대선 직전 거액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전갑길 민주당 의원이 2002년 10월 대정부질문에서 제기했다.
곧 언론들이 이 같은 의혹을 앞 다퉈 보도했고, 관련 의혹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굳어져 갔다. 당연히 대선 구도에도 끼친 영향이 상당했다.
이 과정에서 의혹 제기 당사자들은 자금 전달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 즉 ‘최후의 히든카드’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으며, 끝내 이 카드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사안을 더욱 극적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대선 이후인 2003년 4월 검찰이 언론사 등에 의혹을 제보한 건설사 대표 김선용(52) 씨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그가 유죄판결을 받는 등 의혹은 허위사실임이 뒤늦게 밝혀졌다.
결국 결정적인 카드를 쥐고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인 셈이다.
“정치가 포커보다는 바둑판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이 부장검사의 바람과 달리 올해도 5년 전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조짐이다.
정치권은 유력 대선주자의 ‘X파일’ 존재 유무로 시끄럽다. 후보들끼리,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당사자들끼리 중구난방으로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벌써부터 명예훼손과 맞고소, 고발이 쌓이면서 또다시 검찰 수사로 진위가 판가름 날 상황이 왔다.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검증의 룰이 포커 같은 ‘기만 게임’이 아니라 바둑처럼 공개되고, 정정당당한 모습이길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 needju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