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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1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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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본부장은 미국 사람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빼면 모든 생각이나 꿈도 영어로 꿀 정도로 철저히 미국화(Americanized)된 사람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한국에서 길러진 인재가 아니다. 직업 외교관인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2년을 제외하곤 중고교 대학까지 미국에서 공부했다. 컬럼비아대에서 국제정치학과 통상법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이다. 미국이 길러 낸 통상전문가가 미국을 상대한 셈이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제문제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2008년 3월 모집정원 150명의 서울국제고와 세종과학고를 동시에 개교하겠다고 발표한 뒤 홍역을 치르고 있다.
문민정부가 1995년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를 조기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국제고가 우여곡절 끝에 13년 만에 문을 열게 됐지만 첫발부터 순탄치가 않다.
전국교직원노조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이 특정 계층을 위한 ‘귀족학교’라고 비판하며 공사가 반쯤 진행된 학교 설립 계획을 철회하고 공정택 교육감은 퇴진하라고 시교육청에 몰려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교육청은 교장 자격증은 없지만 외교 통상 분야 등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교장으로 영입해 국제고를 특성화하려던 계획도 접고, 일반 교장 중에서 뽑을 수밖에 없게 됐다. 특성화고가 돼야 교장공모제를 할 수 있는데 특목고인 국제고가 특성화고로 동시에 지정된 것을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국제고 과학고 등 특목고는 부유층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기관으로 변질되고, 귀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사교육 경쟁을 초래해 교육 전반을 황폐화시킨다”는 논리로 극구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더 나은 교육을 시키려는 학부모의 열망을 더는 평준화의 논리로 막기 힘든 상황이다. 서울대도 성에 차지 않아 아예 외국 학교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늘고 있는 것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특목고 등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그나마 평준화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참여정부에선 이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한미 FTA 체결을 계기로 국제문제 및 통상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지식이나 어학실력 부족으로 자칫 협상을 그르칠 경우 2002년 중국과의 마늘협상 파동 때처럼 국익에 엄청난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중국 등 외국과 외교 및 무역협상을 벌여야 하지만 우리의 전문가 풀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에서 국제고 하나 세우는 데 13년이 걸리고, 특목고를 세웠다고 교육감 자리를 그만두라는 풍토 속에서 과연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인재를 길러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인철 교육생활부 차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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