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경숙]신뢰의 리더십

  • 입력 2006년 7월 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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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 회장이 자신의 재산 370억 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부유하면서도 근검과 절약을 생활화하고 있는 그가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헌납하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신문 기사에서 그의 독특한 투자관을 읽게 되었다. 버핏 회장은 주식투자를 할 때 기업 경영자의 ‘사람됨’을 경기나 환율 같은 ‘수치’보다 우선해서 고려한다고 했다. 즉, 그는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을 통해 기업의 미래 가치를 예측하고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5·31지방선거를 치른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래 지방의회로는 5번째, 각급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을 동시에 선출하기로는 4번째였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화 단계에서 성숙 단계로 거듭나고 이를 통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의 활로를 열어 갈 주역들을 뽑는 선거였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새로이 출범한 지방자치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더욱 크다. 따라서 이를 이끌어 갈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각오와 자세도 남달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인계받은 그 자리를 리더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리더십은 직책과 직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섬기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그리고 타인이 비전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잠재력을 계발하도록 하는 힘이다. 자신이 리더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한 기관의 장(長)이었는지는 4년 후 지역 주민들의 평가에 따라 결론이 나올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버핏 회장의 기업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투자관은 지방자치단체장뿐 아니라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리더십에 대한 몇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첫째, 리더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으로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이 명확할수록, 또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구성원들의 힘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기 때문에 효율성이 배가되고 몇 배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구성원들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 주고 열정을 불러일으켜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동일한 시간을 밀도 있게 관리하게 해 준다.

둘째, 리더는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주인의식에서 비롯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인사 비리, 재정 낭비 등을 지방자치제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도 주인의식이 부재(不在)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있는 이는 역사의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역사의 객이다”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셋째,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늘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기를 바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의심스러운 것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일의 처음과 끝을 분명히 안 뒤에 서명하라고 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일을 잘 아는 체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두려워하여 의심스러운 것을 어물쩍 그냥 덮어 둔 채 있다가 아전(衙前)들의 술수에 빠지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고위직에 앉으면 겸손해지기가 쉽지 않다. 겸양의 자세야말로 끝없는 자기 성찰을 통한 내면의 성숙으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라 생각한다.

며칠 전 자국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16강전에 진출한 호주 팀의 한 선수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그 선수는 호주 팀 선수들의 불굴의 투지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에 “거스 히딩크 감독을 위해서라면 그라운드에서 쓰러질 각오가 돼 있다”고 답했다. 히딩크 감독의 마법은 여기에 있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그의 비전과 꿈을 한마음으로 공감하며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힘인 것이다. 새롭게 시작한 지방자치정부에서도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훌륭한 수령은 떠난 뒤에도 백성의 사랑이 남는다.” 정약용의 200여 년 전의 말을 떠올려 보며, 오늘날의 이상적인 목민(牧民)을 그려 본다.

이경숙 객원논설위원·숙명여대 총장 kslee@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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