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임성아 데뷔 2년만에 LPGA 우승

  • 입력 2006년 4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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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불허’ 소렌스탐에 통쾌한 역전쇼

그의 아버지는 항공기 조종사였다. 그래서 그 역시 어려서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그것도 부동의 세계 정상을 꺾고 우승한 것이라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늘 곁에 있던 아버지는 정작 기쁨의 순간을 함께할 수 없었다. 병상에 계셨기 때문. 아버지를 떠올리는 그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24일 미국 조지아 주 스톡브리지 이글스랜딩CC(파72)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플로리다스 내추럴 채리티 챔피언십.

전날 1타차 2위였던 임성아(22·농협한삼인)는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역전 우승했다. 지난해 미국 LPGA 데뷔 후 2년 만의 첫 우승.

좀처럼 역전패를 몰랐던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어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임성아에게 기가 질린 듯 무너졌다. 통산 104승이나 합작한 소렌스탐, 캐리 웹(호주), 크리스티 커(미국)가 모두 임성아의 벽에 막혀 공동 2위(14언더파 274타)에 머물렀다. 통쾌한 승리였다.

초반부터 시소게임… 17번홀서 희비 갈려

소렌스탐과 난생 처음 같은 조에서 맞붙은 임성아는 경기 초반부터 ‘장군 멍군’을 부르며 팽팽히 맞섰다. 5번홀에서 소렌스탐이 칩인 버디를 하자 7번홀에서 임성아가 칩인 버디를 한 것. 16번홀까지 공동선두로 숨 막히는 접전을 벌인 이들은 17번홀(파4)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소렌스탐의 드라이버티샷이 오른쪽 숲에 들어가 OB가 된 것. 소렌스탐은 네 번째 샷을 컵 1.5m에 붙였으나 보기 퍼팅마저 놓쳐 더블보기. 반면 임성아는 150야드를 남기고 5번 아이언으로 한 세컨드 샷이 짧았지만 58도 샌드웨지로 세 번째 샷을 30cm에 붙여 파를 지켰다. 소렌스탐에게 2타차로 앞선 임성아의 눈앞에 우승컵이 아른거렸다.

42세에 본 늦둥이, 아버지와 ‘이글스 랜딩 결의’

임성아의 아버지 임용원(64) 씨는 공군사관학교(15기) 출신의 파일럿. 전투기 조종사와 대한항공 기장을 거쳐 2003년 은퇴 후 줄곧 임성아의 미국 투어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았다. 두 아들을 둔 뒤 42세의 나이에 본 늦둥이 막내딸 임성아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했다. 지난해 5월 이 대회에 함께 출전한 이들 부녀는 골프장 입구의 간판을 보며 손가락을 걸었다. 이글스 랜딩 골프장. 군복무 시절 임 씨가 몸담았던 에어쇼 팀의 이름이 블랙 이글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뭔가 인연이 있는 것 같으니 좋은 성적을 내 보자고 한 것. 2년 넘게 늘 딸과 동행한 임 씨는 지난주 무릎 통증이 심해져 귀국해 24일 입원했다. 수술을 앞둔 임 씨는 “1년 만에 약속을 지킨 딸의 우승 소식에 이미 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미-안시현과 쥐띠 삼총사… 차세대 주역

1984년생인 임성아는 함께 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동갑내기 김주미(하이트), 안시현과 주니어 시절부터 우정 어린 대결을 벌였다. 임성아는 세화여고 2학년 때인 2001년 한국프로대회인 토토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올랐고 2002년에는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고교 동창 김주미와 힘을 합쳐 12년 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안시현은 2003년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신데렐라로 떠올랐고 김주미는 올 시즌 개막전인 SBS오픈에서 첫 승을 따냈다. 이들은 한국 여자골프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며 차세대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임성아의 우승으로 한국 여자골프는 올 시즌 열린 미국 LPGA투어 7개 대회에서 3승을 올리는 강세를 보였다. 한국 선수로는 통산 55번째 우승이며 19번째 챔피언. 우승 상금은 21만 달러.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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