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韓日의 40대 기수들

  • 입력 2006년 2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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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의 상징인 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48) 가나가와(神奈川) 현 지사는 ‘준비된 정치인’이다. 대학 졸업 후 정치지도자 양성소인 마쓰시타 정경숙(政經塾)에 들어간 그는 2년간 미국 하원의원 비서로 일한다. 이때 치열한 정책 대결의 현장을 지켜보며 “이런 정치를 일본에 실현해야겠다”고 결심한다.

29세 때인 1987년 ‘정치를 하려면 생활현장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그는 거물이던 나가스 가즈지(長洲一二) 당시 지사의 5선 연임을 저지하는 데 앞장섰다.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나가스 지사를 지지했지만 장기집권으로 조직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이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그 뒤 중의원 3선을 하면서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중앙정치에 실망한 그는 2003년 “지방을 통해 중앙정치를 바꾸겠다”며 무소속으로 가나가와 현 지사 직에 도전한다. 이때 선거공약의 실현 방법, 기간, 재원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37개 항목의 매니페스토 공약집을 발표했다. 100엔에 판매한 공약집은 2000부나 팔렸고 홈페이지 조회는 6만 건을 넘을 만큼 호응을 얻었다. 그는 당선 후 매년 외부 위원회의 객관적 검증과 평가를 받고 있다. 3일 방한한 그는 “의지를 갖고 유권자들을 설득하면 표는 저절로 온다”고 말했다.

일본의 차세대로 꼽히는 40대 정치인은 대부분 독자 브랜드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발이 땅에 닿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치평론가인 자민당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49) 의원은 ‘매력 있는 일본’이 구호. 그는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근무했다. 2세 의원인 고노 다로(河野太郞·45) 의원은 자민당 소속이면서도 ‘자민당 해체’를 주장한다. 선거용 붕당조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후지제록스에서 일했다. 여성 총리감으로 꼽히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45) 전 우정상은 호텔 청소원이 첫 직장이었다.

우리의 ‘여야 40대 기수’들은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다. 처음부터 정치가 직업이다. 그렇다 보니 바닥 민심이나 민간 현장과 동떨어진 이념적 주장이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인 구호를 외치기 일쑤다. 열린우리당의 2·18 경선에 출마한 40대 주자들만 해도 어떻게 합종연횡(合從連衡)의 틀을 짜 표를 늘릴까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당 안팎에선 후보단일화를 통해 40대의 세력화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논의조차 지지부진하다. ‘한국을 바꾸겠다’거나 ‘여당을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키겠다’는 비전은커녕 젊다는 것 말고 윗세대 정치인들과 무엇이 다른지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참모였던 딕 모리스 씨는 선거에 이기려면 ‘잔재주보다 좋은 전략을, 이미지보다 이슈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현실보다 높은 이상적 마음가짐과 전략 전술을 갖추도록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라”고 충고했다.

시대정신은 결코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있다. 그것을 붙들려면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을 민생의 현장에서 가슴으로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의 40대 기수들이야말로 표를 얻는 기술보다 먼저 민심의 한복판에 들어가 무엇이 국민의 요구이며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어 갈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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