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44>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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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대는 어디 사는 누구며 항왕 밑에서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한왕이 항복해온 초나라 장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그 초나라 장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저는 회계(會稽)에서 나고 자란 여마동(呂馬童)이라고 합니다. 일찍이 무신군 항량이 오중(吳中)을 떠날 때 향당(鄕黨)의 또래 백여 명과 함께 말 한 필을 구해 타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 뒤 항왕을 따라 함곡관 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팽성으로 돌아와서는 낭중(郎中)으로 항왕을 모셔 왔습니다.”

“그렇다면 항왕이 늘 아끼고 내세우는 강동의 자제(子弟)겠구나. 어떻게 하여 이렇게 과인을 찾아오게 되었는가?”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는 말도 있습니다만, 군대에게는 먹는 것이 곧 싸우는 힘입니다. 군사들은 먹여주지 않으면 싸우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항왕은 이미 군사들을 먹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東)광무의 초나라 진채에서는 때가 되면 언제나 밥 짓는 연기가 오르고, 초나라 군사들의 사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항왕이 제 군사를 먹이지 못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한왕이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을 수가 없어 그렇게 물었다. 여마동이 수척한 얼굴을 불빛에 드러내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난 가을 계포 장군이 팽성으로 돌아가시어 양도(糧道)를 잇자 초군 진영에도 제때에 군량이 이르게 되었습니다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이 겨울 들어 한나라 장수 유고와 노관이 팽월과 연결하여 다시 양도를 끊으니 동광무의 초나라 군사들은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 끼가 두 끼로 줄고, 군마(軍馬)를 잡아 허기를 돕기도 했으나, 이 봄 들어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멀건 죽으로도 하루 두 끼를 잇기 어려우니 이미 초나라 군사는 싸울 수 있는 군사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명색이 장수라 견딜 만하지만 저 가여운 사졸들이야 무슨 죄가 있습니까? 거기다가 대왕의 군대는 나날이 강해지고 군량도 넉넉하다 하니 싸우기도 전에 굶어죽게 된 사졸들이라도 살리고자 이렇게 도망쳐 나왔습니다.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거두어 주십시오.”

한왕은 원래가 거창하게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유자(儒者)나 세객(說客)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마동이 솔직하게 배고픔을 앞세우며 빌고 드니 오히려 미덥게 여겨졌다.

“사냥꾼도 품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쏘지 않는다 했다. 과인이 명색 한 나라의 군왕(君王)인데 갈데없어 찾아오는 그대들을 어찌 내치겠는가. 그대를 기사마(騎司馬)로 삼을 터이니 앞으로는 과인을 위해 힘을 다하라. 그대를 따라온 사졸들도 우리 한나라의 기치 아래 싸우겠다면 모두 받아주겠다.”

한왕은 그렇게 말하며 여마동과 그를 따라온 졸개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장량과 진평을 불러들이게 해 제법 호기롭게 말했다.

“자방, 아무래도 때가 된 것 같소. 내일은 일찍 군사를 산 아래로 내려보내 적의 세력을 한번 떠 봅시다. 광무산에 이렇게 갇혀있기도 이젠 지긋지긋하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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