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평중]홍콩 원정시위, 꼭 그랬어야 했나

  • 입력 2005년 12월 20일 03시 09분


코멘트
홍콩에서 격렬한 반(反)세계무역기구(WTO) 시위를 벌이던 한국의 원정 시위대가 18일 새벽 홍콩 경찰에 전원 연행되었다. 단순 가담자들은 대부분 풀려났지만 주동자 11명은 홍콩법에 따라 불법시위 혐의로 기소됐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홍콩 사법 당국이 시위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적이 거의 없지만 이번 경우는 다른 것 같아 걱정된다.

시위대의 과격 행위에 대한 홍콩 언론들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다. 홍콩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폭력시위대를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중지 둥팡(東方)일보는 한국 시위대가 “폭민(暴民)의 본색을 드러내고 홍콩의 공권력에 도전해 왔다”고 비난했으며, 애플데일리는 “1967년 반영(反英) 폭동 이래 가장 심한 수준의 시위였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한국 시위대에 우호적이었던 홍콩 최대 중문일간지 밍(明)보도 18일자 사설을 통해 “홍콩 시민은 이들에 대한 구속, 출국 금지 등을 포함한 경찰의 과감한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국 시위대가 그동안 평화 시위를 벌였을 때 호의적 기사를 계속 내보냈던 다궁(大公)보나 원후이(文匯)보 등 친중국계 일간지들 또한 “홍콩에서 1960년대 말 이후 가장 심각한 난동과 진압 장면이 나타난” 데 대해 개탄해 마지않았다. 이는 반세계화 운동과 농민 운동의 대의와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실망스럽고 부정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불평등 무역과 농업 협정에 반대해 홍콩에 간 한국 시위대는 그동안 삼보일배 행진, 풍물패 공연, 촛불 집회, 해상 시위 등 다채로운 구경거리와 생각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홍콩 시민과 언론의 큰 관심과 성원을 받았다. 적지 않은 홍콩 시민이 한국 시위대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열렬한 박수로 격려하는 등 한국 시위대의 ‘문화행사식 평화 시위’가 새로운 형태의 한류(韓流)로까지 주목받은 것이다.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였고 지금은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의 주민들은 원래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고 비정치적이다. 여기에 중국 당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중국계 언론들이 그간 일체의 사회운동에 부정적 보도로 일관해 온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 시위대의 평화 시위에 대한 홍콩 시민과 언론의 호의적 태도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과였다. 16일자 밍보는 “한국 농민 시위대가 국제 문제에 관심이 적은 홍콩인들의 눈을 뜨게 했다”고까지 상찬했으며 13, 14일자 여론조사에서도 홍콩 주민들의 60%가 한국 시위대의 활동을 받아들인다고 보도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판에 발생한 과격 폭력 시위로 사태는 일거에 반전되고 말았다. 한국 농업이 처한 어려움과 WTO에 반대하는 시위대 활동에 대한 홍콩시민과 언론의 공감도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 애당초 농민과 노동자 단체들이 우리 영사관과 홍콩 경찰에 홍콩 법질서 안에서의 합법적 평화 시위를 약속했고 각목이나 죽봉 등도 그 전제 아래 반입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영사관이 각료회의 개최 전 홍콩 당국과 긴밀한 협의 아래 한국 시위대에 대한 입국 규제를 하지 않도록 한 외교적 노력도 그 빛을 잃었다.

되풀이되는 과격 폭력 시위는 자기 패배적 행위다. 무엇보다 큰 손실은 그동안 운동의 대의에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던 시민들조차 점차 염증을 느끼게 된다는 데 있다. 민심과 유기적으로 결합한 사회운동만이 힘을 얻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감안하면 이는 치명적 사태다. 민주적 법질서 위에서만 성숙한 사회가 꽃필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 외에도 이제 사회운동 단체들은 운동의 유효한 방법론에 대해 심각한 자기성찰을 할 때가 되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