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경찰, 구두지휘는 수용 서면지휘는 거부?

  • 입력 2005년 12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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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요구는 전례가 없고 법률적인 근거가 미약합니다.”(박희용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

“당시 파악하기로는 법률적인 근거가 미약했습니다. 잘못됐다면 시정하겠습니다.”(양재천 충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

14일 오후 3시와 5시 반 충남경찰청 기자실에서는 두 번의 브리핑이 있었다. 경찰이 검사의 피의자 면담을 거부한 사건과 관련된 설명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2시간 반 만에 내용이 완전히 뒤집혔다.

검찰과 경찰의 공방은 13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김모(28) 씨에 대한 대전지검 이진호 검사의 면담 요구를 경찰이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기록만으로 구속 판단이 어려우니 면담해야겠다”고 지휘했고 경찰은 “법률적 근거가 미약하고 피의자 신병 인치(引致·사람을 끌어오거나 불러 감)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다. 검찰이 “검찰 수사지휘권에 대한 거부”라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경찰은 물러서지 않았다.

박 대장은 첫 브리핑에서 “검찰이 검찰사건사무규칙(39조)을 피의자 면담 근거로 들지만 내부지침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검사의 지휘는 2003년 10월부터 시작된 ‘구속영장 청구 전 피의자 면담제도’를 활용한 것이었다. 검찰은 이날 “올해 들어서만 14차례 충남경찰청 관내에서 면담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나중에야 “전에는 검사가 설명 없이 피의자를 데려오라고 구두로 지시했지만 이번처럼 사유를 명기해 서면으로 요구한 경우는 없어 전례가 없는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포괄적 구두 지휘는 수용하고 사유를 적시한 서면 지휘는 거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경찰은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또 검찰이 법무부 인권보호수사준칙을 추가로 제시하자 경찰은 법률적 근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엄연한 규정이 있는데도 검찰의 지휘를 무턱대고 거부한 것은 검경 수사권 갈등에서 빚어진 과잉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더욱 빈번해지고 있는 검경 갈등에는 법의 수혜자인 시민은 없고, 검경의 영역 이기주의만 있는 것 같아 볼썽사납다.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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