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중 민족주의에 갇힌 근현대사

  • 입력 200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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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사학자인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는 “근현대사 교과서가 민중 민족주의의 우물에 갇혀 있다”고 진단했다. ‘교과서포럼’이 15일 개최하는 ‘중고교 교과서 내 한국 근대사 서술의 허구와 진실’ 심포지엄에서 발제할 예정인 그는 “국내 교과서 집필자들이 민중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역사를 뜯어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1850년부터 1910년까지의 근대사에 대한 그의 분석은 구체적이고 설득력을 지닌다. 그는 “나라를 빼앗겼던 이 시기 역사에선 우리가 어떤 국제적 상황에서 침략을 당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아야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과서들은 하나같이 이를 외면하거나 허술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에 분수령이 됐던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은 교과서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대한 설명도 미흡하다. 반면에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65페이지 분량의 근대사 가운데 9페이지나 할애하고 있다. 의병활동이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미루게 만들었다는 설명도 역사의 단면만을 읽은 것이다. 학생들은 당시의 긴박했던 국제정세를 포함한 역사의 전체상은 배우지 못한 채 ‘동학농민운동’과 ‘조선의 식민지화’라는 일부분만 배우고 곧바로 독립운동에 접하는 것이다.

집필자들이 ‘민중적’ ‘민족적’ 사건을 내세우다 보니 같은 시기의 안중근 의거와 명성황후 시해, 일본의 독도 편입 등 더 비중이 큰 사실(史實)들이 제대로 기술되지 않았다. “이런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는 청소년들이 감상적 민족주의와 민중지상주의에 도취돼 국익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가 걱정된다”는 최 교수의 지적에 우리는 공감한다.

을사늑약 100주년과 광복 60주년인 올해를 되돌아보면 정권과 일부 세력이 외치는 역사청산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국권을 빼앗긴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집권계층의 무능 등 조선이 망하게 되는 전체 과정을 균형 있게 전달해야만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최 교수의 말대로 특정 이념에 맞춰 쓴 역사는 이미 역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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