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회색의 한나라당, 지지율 40%는 거품이다

  • 입력 2005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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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석을 차지한 제1 야당의 정체성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대체 무엇인가. 국회의 막바지 예산심의와 민생법안 처리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드러내고 있는 ‘정책 색깔’의 혼란상을 보면서 의문이 더 커진다. 그저 기회주의적인 ‘잡탕 정당’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당초 치밀한 검토와 협상전략 없이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서 8조9000억 원을 삭감하겠다고 공언했다가 7조8000억 원, 4조 원으로 슬그머니 낮추더니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일자 다시 9조 원으로 말을 바꿨다. 하지만 어떤 항목에서 9조 원을 삭감할지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여당과 경쟁하듯, ‘민원성 예산’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과정에서 끼워 넣고 수조 원씩 드는 국책사업추진 법안들도 쏟아냈다.

쌀 협상안 비준은 농민 표를 의식해 상임위원회 통과 이후 두 달 가까이 미뤘다.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에 대해서도 기준시가 9억 원과 6억 원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국익과 경제원칙에 대한 깊은 인식도, 확실한 정책목표도 없이 여론 풍향에 흔들려 온 모습이다.

국정의 총체적 혼란과 좌(左)편향 포퓰리즘의 득세에는 유효한 대안으로 국민의 마음을 붙잡지 못한 한나라당의 책임도 크다. 한나라당은 제대로 된 개혁적 보수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기는커녕 구태(舊態) 속에 안주한 채 수구(守舊)라는 이미지를 세탁하는 시늉만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얻은 40%대의 지지에 고무된 듯하다. 그러나 시원찮은 요리로 눈치장사나 하려 해선 안 된다. 국가와 다수 국민의 이익을 창출할 국정 청사진과 구체적 정책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지지율은 순간의 거품일 뿐이다.

국민은 여권의 아마추어적이고 ‘구호와 결과가 판이한’ 국정 운영에 지쳐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한나라당을 크게 신뢰하지도 않는다. 현 정권의 정체성만 따질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부터 분명히 해야 할 한나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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