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도정일]文化가 ‘양보해도 될 작은 것’인가

입력 2005-11-01 03:00수정 2009-10-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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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총회는 최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을 찬성 148, 반대 2, 기권 4표로 채택했다.

2001년의 ‘문화다양성 선언’이 만장일치였던 것에 비하면 이번 협약은 만국 동의는 아니지만 압도적 지지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한국도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협약 채택 이후 우리 정부가 보인 반응은 모호하고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 정부의 정확한 의지가 뭐냐, 찬성하고도 뒤로는 딴전을 피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은 지금 먹고살기도 바쁜데 문화 다양성이 뭐 그리 중요하냐, 다양성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는 식의 ‘오불관언’일지 모른다. 그런데 다양성 문제는 ‘먹고사는 데도’ 아주 중요하다.

문화 다양성이 의미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모든 나라의 개인, 집단, 사회가 누려야 할 기본 권리로서의 ‘문화적 표현 방식의 다양성’이고, 둘째는 예술을 포함한 문화 품목들의 ‘창조, 생산, 보급, 유통, 향유 양식의 다양성’이다. 첫 번째 의미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거의 이론이 없다. 문제는 두 번째 의미다. 영화, 음반, 방송 등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상품의 경우 보급과 유통의 양식을 다양화한다는 것은 국가 간 교역과 통상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알다시피 우리 영화계는 스크린쿼터를 지키고 미국과의 투자협상에서 문화 생산물은 제외하도록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오고 있다. 문화계 전반의 주장도 그러하다. 이번 협약은 개별 국가가 자국 실정에 맞게 다양한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주권을 보장하는 최초의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문화상품과 서비스 등은 상업적 측면만이 아닌 정체성, 가치, 의미를 전달하는 문화적 성격도 갖기 때문에 그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명시 조항도 들어 있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상 대상에서 문화 상품과 서비스 등이 제외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것이다.

이번 협약에 반대한 두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각종 문화상품과 서비스부문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려 온 미국으로서는 협약에 찬성할 경우 당장 스크린쿼터나 문화적 예외 같은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곤경에 빠진다.

그 미국을 상대로 ‘작은 것’은 양보하고 ‘더 큰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외교통상부나 재정경제부의 논리다. 우리 정부가 시종 모호한 태도를 보여 온 것은 그런 논리 때문이다. 협약 채택 직후 우리 측은 이번 협약이 “다른 협약의 권리나 의무를 변경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는 우리 정부만의 독자적인 의견 표명이 아니라 ‘협약 제20조 2항’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처럼 이번 유네스코 협약은 그 내용에 양면성이 있어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장차 이 협약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만약 정부가 스크린쿼터 폐지를 포함한 기존 정책을 고수한다면 이번 협약의 효용도 살리지 못한다.

문화는 ‘작은 것’이 아니다. 세계화시대는 국가 간 문화교역의 불균형, 경제가치와 시장논리에 의한 문화 다양성의 파괴, 개발도상국 문화 생산력의 위축과 생산 기반의 붕괴, 약소 문화의 소멸 위기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문화는 분쟁 영역이 아닌 평화, 공존, 품위의 기초여야 하며 이 기초가 문화 다양성이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비평이론

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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