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脫北女 동영상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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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완장 찬 북한 군인이 몽둥이로 여자를 구타한다. 여자가 쓰러지자 발길질을 해 대고 구둣발로 여자의 머리를 짓밟는다. 이어서 북한 군인이 여자를 신문하는 모습, 여자에게 또 발길질을 하는 장면…. 26일 언론에 공개돼 조작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탈북자 구타 사진’ 14장을 시간대별로 펼쳐본 내용이다.

▷사진이 조작되거나 연출됐다고 주장한 쪽은 북한 군인의 머리가 이례적으로 길다는 점, 완장 위치가 오른팔에서 왼팔로 바뀐 점, 사건 발생 시점이 8월인데 여성이 긴팔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사진을 공개한 측은 “국경 초소에서 근무하는 현역 북한 군관(장교)이 몰래 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그 군관은 신변 위협을 느껴 최근 탈북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 사진들은 일부일 뿐 38분짜리 동영상 전체가 공개되면 실제 상황임이 금방 드러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 참상을 고발하는 증거를 놓고 ‘가짜 시비’가 벌어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월 반(反)체제 낙서가 덧씌워진 김정일 포스터 사진이 공개됐을 때, 3월 북한 주민들에 대한 공개재판과 처형(총살) 장면이 몰래 촬영된 듯한 비디오테이프로 소개됐을 때에도 “조작됐다”는 주장이 있었다. 북한이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곳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데 왜 자꾸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사실은 아무래도 좋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뒤틀린 북한관(北韓觀) 때문일까.

▷탈북 8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려다 붙잡혔다는 그 여자의 보따리에는 중국 돈 1만 위안(약 128만 원)과 술, 담배, 한국 영화와 노래 CD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돈이면 북한의 가족은 한동안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술과 담배도 여러 용도로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고, 몇 장의 CD는 바깥세상을 보여 주는 창(窓)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그는 얻어맞고 짓밟힌 것보다 가족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던 그 꿈이 사라진 데 대해 더 가슴 아파하지 않았을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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