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7년 중국혁명 저술가 님 웨일스 출생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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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여름 대장정(大長征)을 치러낸 중국 공산당의 새 근거지 옌안(延安)에서 미국인 저술가 님 웨일스와 한국인 혁명가 김산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두 사람은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스물두 번 만났고 이 만남의 기록은 4년 후 ‘한 한국인 혁명가의 생애’란 부제가 붙은 ‘아리랑’이라는 책으로 태어났다.

‘아리랑’의 주인공으로 본명이 장지락(張志樂)인 김산은 만주와 중국 대륙을 누비며 혁명 활동을 하다 33세 때인 1938년 ‘트로츠키주의자 일본 스파이’로 몰려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처형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님 웨일스는 1907년 9월 21일 미국 유타 주에서 태어난 헬렌 포스터의 필명. 그녀는 서방 세계에 중국 공산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의 활동을 생생하게 전했던 책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거 스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시아의 황후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중국을 찾아왔다”(스노 자서전)고 말할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독립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사실 웨일스의 중국 방문은 공적 성격이 강했다. 1931년 상하이(上海)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서기관으로 부임한 그녀는 외교관 임무 외에 당시 중국의 은본위 화폐제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과 미국 시애틀에 본거지를 둔 신문연합의 통신원 역할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이런 삶은 1932년 스노와 결혼한 뒤 중국 공산당 활동에 깊이 빠져들면서 확 바뀌고 말았다. 그녀는 김산과 인터뷰하기 직전 중국 공산당 지도자 25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하기도 했다.

1949년 성격 차이로 이혼한 뒤 미국 코네티컷 주 매디슨에 머물며 중국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펴내는 작업에 몰두했던 그녀는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활동을 재평가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1995년 리영희(李泳禧) 한양대 교수와 고은(高銀) 시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등이 웨일스에게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주자고 정부에 청원했으나 ‘아리랑’이 공산주의자의 삶을 다룬 책이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러나 만 10년 뒤인 올해 광복 60주년을 맞아 웨일스 덕택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생애가 되살아난 김산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은 셈이다.

김동철 정치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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