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학력과잉’ 대학에도 책임있다

  • 입력 2005년 9월 15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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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아버지는 성적이 떨어진 자식에게 화를 내며 소리친다. “대학에 못 들어가면 잉여인간이야!”라고. 잉여인간. 대학에 못 들어가면 낙오자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제는 대학을 졸업해도 잉여인간으로 떨어지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 됐다. 불과 이삼십 년 사이의 일이다.

그동안 한국은 다른 나라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를 압축적으로 수행해 오는 놀라운 민족적 저력을 보여 주었다. 한국의 경제적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 극진한 교육열 때문이었다. 논 팔고 소 팔아 서울로 자식을 유학보내던 시대에서 이제 ‘기러기 아빠’가 생겨날 정도가 되었으니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한국인에게서 세계적인 음악 천재가 많이 탄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극성인 부모의 성화에 자식들이 음악세계에 입문하게 되고 음악적 재능이 일찍 발견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모의 극진한 관심과 헌신으로 음악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인재만이라도 잘 키워 내자는 한국인의 뜨거운 교육열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망이 학벌주의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적 자본주의에서 배태된 것이라면 분명 문제다. 동아일보가 시리즈를 통해 지적했듯 한국은 지금 학벌중심주의에서 오는 학력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고교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이 82%에 이르지만 대졸자들은 고졸자에게 적합한 직업훈련학교에 대거 재입학하거나 취업을 위해 전문대로 편입하는 상황이다. 청년실업률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석사 박사 학위 취득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축구부터 가르치고, 여자아이면 춤부터 가르치는 저 남미의 가치관에 비하면 한국인은 근면한 생존의 논리와 배움의 중요함을 아는 의식 있는 국민이다. 문제는 배우려는 사람들을 한국의 대학이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대학의 목표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전문인을 만들자는 것인지, 교양인을 만들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학교육의 전문성이 확보되어 있다면 기업은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데 그토록 많은 돈과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됐지만 대학의 경쟁력은 100등 안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대학 소유자와 대학 교육자가 임의로 대학을 운영하던 시대는 지났다. 서비스 시대에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기 위해 대학은 외국대학과 경쟁할 만한 커리큘럼과 교육제반 시설, 산학연 인적 자원을 구축해야 한다. 아마도 한국 사회와 조직에서 광복 이후 가장 변화하지 않은 곳은 대학이라는 공간일 것이다. 능력 있는 인재보다는 학연과 지연과 정실로 신임 교수를 뽑으려 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교수들은 권위의식 속에서 도제식으로 제자를 키워 내고 있고 대학원생들은 ‘사노(私奴)’의 길을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학벌중심주의를 타파하자, 대학교육의 권위의식을 버리자,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하자, 의식을 바꾸자는 말은 너무나 쉬우면서 너무나 어렵다. 가라사대 공자님 말씀 같은 것이다.

우리 대학은 외국 대학처럼 현장성 있는 경쟁력을 키울 것인가. 자율적인 인수합병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것인가.

한국 대학이 오랜 관습적 보수성을 스스로 깨뜨리지 않는다면 10년 뒤 한국의 대학생들은 중국에 가서 취업자리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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