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中의 테이블 위에 오른 ‘한반도 장래’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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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로버트 졸릭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1세기 한반도의 정치·경제적 장래에 대해 중국과 ‘전략적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며 한반도 구상의 일단(一端)을 밝혔다. 그는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고 한반도 통일 가능성을 오히려 우려(anxiety)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 개발과 위조달러 제작 등 ‘범죄행위’ 때문에 ‘현상유지(status quo)’가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에 나설 가능성을 암시했다.

졸릭 부장관은 “남북한과 미국에 ‘탈이 없는(benign)’ 한반도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라고 중국 측에 권유했다”고도 밝혔다. 미국은 중국을 북핵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만큼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경우의 새로운 동북아 안보질서를 중국과 사전 협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통일까지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한반도 안보 청사진(靑寫眞)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과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우리의 이익을 관철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생긴다.

무엇보다 중국의 주된 관심은 한반도에 적대적인 통일정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는 점이 졸릭 부장관의 발언을 통해 분명해졌다. 미-중 간의 한반도 논의는 우리가 남북통일 문제를 다룰 때 ‘주변국 변수’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의 근거로 내세웠던 것처럼 세계 11위 무역대국인 우리의 국력(國力)은 이제 약하지 않다. 외세(外勢)에 국가 운명을 맡겨야 했던 100년 전 상황과는 다르다. 그러나 ‘민족끼리’에 매몰돼 남북관계를 외교의 축(軸)으로 삼는 듯한 최근 우리 정부의 외교 행보는 한반도 문제가 이미 ‘국제화된 사안’임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를 낳는다.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정부는 남북관계 일변도의 사고(思考)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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