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수형/어느 검사의 ‘변신’

  • 입력 2005년 8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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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그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왜 벌레로 변했는지, 그 변신의 이유도 과정도 모른다. 단지 벌레라는 결과만이 그에게 던져져 있을 뿐이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이야기다.

2일 밤 10시.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김상희(金相喜) 법무부 차관. 그는 지친 표정이었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아들 수사를 지휘하던 기개도 볼 수 없었고 고위 공무원으로서의 자긍심도 다 잃은 듯했다. 10여 일째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X파일’ 때문이었다. 국가 정보기관이 몰래 엿들었고 어느 방송사가 보도해서 알려진 “재벌과 정치 검찰 언론의 유착”의 증거. 그는 그 드라마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재벌 실권자와 언론사 사장의 대화에서 검사들의 이름과 명절 떡값이 거론됐고, 그는 그 대화에 등장하는 최고위급 현직 검사였다. 그때부터 그는 부패검사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카페에서 어렵게 입을 연 그는 “이제 다 끝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1979년 청운의 꿈을 안고 검사의 길로 접어들어 26년간 할 만큼 했다고 했다. 운이 좋아 검사장도 하고 법무부 차관까지 올랐으니 국가로부터 분에 넘치는 혜택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고….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순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보니 부패검사가 되어 있는’ 그 기막힌 현실을….

차마 물어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정말 안 받으셨습니까?”

“그건…. 이 기자가 알아서 생각하세요.”

그는 1996년 12·12와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신군부 반란세력을 기소했다. 이듬해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기획관으로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아들 현철(賢哲) 씨 수사를 지휘했다. 검사가 큰 사건 수사를 많이 하면 적도 많아진다. 그가 처신에 문제가 있었으면 벌써 도태됐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속을 어떻게 속속들이 알겠는가. 진실은 기자도 모른다. 기자뿐만 아니라 모두 정확한 진실을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실을 가지고 너무 쉽게 단정해서 비난하고 매도한다. 헌법은 ‘무죄 추정’하라고 하지만 현실은 늘 ‘유죄 단정(斷定)’이다.

그날 검찰이 받을 오해 때문에 사표를 낼 시기를 고민하겠다던 김 차관은 18일 사표를 냈다. 어느 국회의원이 ‘부패검사’의 실명을 밝힌 뒤다.

카프카의 소설 속의 벌레는 나중에 현실을 이해하고 자신의 죽음에 동의한다. 그리고 교회의 탑 시계가 3시를 칠 때 그는 죽어간다.

김 차관의 사표 제출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가 기자실에 도착한 것도 18일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이수형 사회부 차장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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