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니콜라스 크리스토프]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 주는 교훈

  • 입력 2005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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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도 평양 대동강변에는 푸에블로호가 전시돼 있다.

푸에블로호는 1968년 북한이 ‘동쪽 영해 밖’에서 나포해 국제위기를 불러일으킨 미국 해군 정보함이다. 이 사건으로 미군 병사 1명이 사망했고 82명이 약 1년간 수감돼 고문을 받았다. 당시 붙잡힌 미군들은 맥스웰 스마트 같은 TV 배우 이름을 배후공범자라고 진술했다. 거짓 자백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미군 병사들은 사진촬영 때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리며 북한 사진사에게 ‘행운을 비는 하와이식 인사’라고 둘러댔다. 북한군은 나중에야 그 의미(욕)를 알았고 미군 병사들은 1주일간 잔인한 고문을 받았다.

미 함정이 평화 시에 나포된 것은 1807년 미 해군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미국에는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북한은 이 전리품을 선전활동에 이용했다. 북한은 이후 주민들을 동원해 원산에서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를 외치며 퍼레이드를 벌였다(김정일은 1970년대 초반부터 지도자로 불렸다).

김정일은 푸에블로호를 원산에서 대동강변으로 옮기는 것이 선전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9년 북한군은 푸에블로호를 화물선으로 가장해 인공기를 달고 남한 주변의 공해를 9일이나 돌아서 서해안 대동강변으로 끌고 왔다.

“푸에블로호가 원산항을 떠났을 때 일본 함정이 감시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당시 배를 옮기는 데 참여했던 한 북한군 상좌가 말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푸에블로호를 일반 화물선으로 보고 철수했다. 북한 항구를 감시하고 인공위성 사진을 판독하는 서방 정보 전문가들이 그 이동을 몰랐다는 것은 나쁜 징조다.

(푸에블로호를 대동강변으로 옮긴 이후) 북한은 플루토늄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책은 북한이 핵물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할 때 중간에서 가로챈다는 것이다. 그러나 53m 길이의 큰 배가 움직이는 것도 감지하지 못하면서 자몽만 한 플루토늄 덩어리의 밀수출을 막는다는 것은 우스운 생각이다.

김정일은 푸에블로호를 이용해 자주의식을 고무하고 서방에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과민에 가까운 민족주의는 김정일의 정당성을 위한 유일한 보호막이다. 재일 조선인들 상당수가 북한을 지지하는 것은 공산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친애하는 지도자’를 남한의 친미 매국노와 비교하며 진정한 민족주의자로 보고 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민족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근시안이 김정일을 돕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이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할 때 그들은 오히려 김정일의 권좌를 돕고 있는 것이다.

1812년 미국 독립전쟁 이후 미국 본토에 군사적 위협이 되는 유일한 두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와 대포동미사일을 가지고 그 리스트에 끼려 하고 있고 플루토늄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잠재적 공급처로 등장하고 있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은 교훈을 준다. 당시 많은 미국인들이 강경노선을 지지했다. 예를 들어 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북한 도시 중 하나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린든 존슨 대통령은 원폭을 투하하면 인질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미국은 지루한 외교를 펼쳤다. 절망적인 것이었고 느렸고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결국엔 ‘차악(次惡)의 최선’이었다. 부시 행정부가 진지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거부하면서 북한은 더 위험한 나라가 됐다. 외교적 노력은 힘이 들고 좌절감을 주고 종종 불만족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지다. <평양에서>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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