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훈]영남서도 냉소적인 ‘낙선인사 챙기기’

  • 입력 2005년 6월 30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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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마다 부산의 처가에 가면 장인과 처남 간에 종종 논쟁이 붙는다. 그 중심에는 늘 부산이 정치적 고향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가 끝났을 때만 해도 노 대통령을 찍었던 처남의 기세가 등등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3년 추석 때부터 장인과 처남의 처지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잘못 찍는 바람에 나라꼴이 엉망이 됐다”는 장인의 목소리가 높아진 반면 30대 중반의 처남은 제대로 대꾸조차 못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몇 개월 전인 올해 설에 처남은 더욱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처남은 “노 대통령을 찍었던 다른 친구들도 명절 때마다 곤욕을 치르곤 한다”며 씁쓸해했다.

노 대통령은 1992년 총선 이후 부산에서 세 차례 낙선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질 게 뻔한 싸움인데도 꿋꿋이 도전을 계속함으로써 영호남 지역구도 타파에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호남에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정당의 후보이면서도 영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의 대선 승리는 한때 3김 시대의 상징인 지역구도 와해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이런 연유로 노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지역구도 해소에 강하게 집착해 왔다. 2003년 정기국회 때에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꿀 것을 호소했으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 반작용 탓인지 지난해 총선 이후 노 대통령의 지역구도 타파 해법은 노골적인 ‘영남 낙선 인사 챙기기’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구애(求愛)의 대상인 영남 쪽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챙겨줘서 고맙다는 게 아니라 “자기편끼리 다 해 먹는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영남에서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는 175만 명에 이른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나라 살림을 펴주고 안보 불안도 없애 그를 지지했던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지역구도 타파의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김정훈 정치부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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